현대차가 한 번 충전에 524㎞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아이오닉6(롱레인지)를 출시하면서 ‘전기차 주행거리 500㎞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동안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국내 출시한 전기차 중 500㎞ 넘게 달릴 수 있는 전기차는 테슬라 보급형인 ‘모델3′와 ‘모델Y’의 롱레인지 버전과 고급 세단인 ‘모델S’ 정도였다. 하지만 테슬라가 주행거리 강점을 내세워 제품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면서 가장 저렴한 모델3 롱레인지 가격은 8469만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아이오닉6는 5500만~6500만원으로 책정됐다. 주행거리 500㎞를 실현하며 상대적으로 싼 가격의 아이오닉6가 전기차 대중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부산 여행도 안심… 충전 걱정 덜어
내연차와 비교해 전기차의 최대 약점은 충전시 300㎞ 안팎의 짧은 주행거리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약 400㎞임을 감안하면, 장거리 여행 도중에 수십분씩 충전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래서 전기차는 주로 출퇴근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에 이어 현대차까지 ‘마의 500㎞’ 벽을 넘었고, 벤츠와 BMW 같은 업체들도 장거리용 전기차 출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기차 대중화도 더 가까워지고 있다.
사실 전기차 주행거리 문제는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선 가장 큰 딜레마였다. 전기차에 배터리를 많이 넣을수록 주행거리는 늘어나지만 그만큼 차량 무게와 차량 가격이 치솟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런 문제를 최적의 디자인과 배터리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해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으로 양산차 최저 수준의 공기저항계수(0.21)를 달성했고, 최적의 배터리 열관리로 주행 중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아이오닉6의 ‘전비’는 지금껏 양산 전기차 중 최고 수준인 kWh(킬로와트시) 6.0㎞로 5.4~5.6㎞/kWh인 테슬라를 뛰어넘었다.
‘500㎞ 전기차 시대’가 오면 그동안 충전 인프라 부족이나 충전 불편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했던 심리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국내 자동차의 1일 평균 주행거리가 약 40㎞임을 감안하면, 2주에 한번 정도만 충전하면 된다”며 “전기차의 충전 불편함도 상당 수준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제 충전 속도·안전성 경쟁
전기차의 최대 약점이었던 주행거리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앞으로 전기차 경쟁은 ‘충전 속도’와 ‘내구성·안전성’으로 옮겨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에 이어 아이오닉 6에도 800V 고전압으로 초급속 충전 기능을 넣어,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 케이블 연결 즉시 자동으로 인증과 결제가 진행되는 PnC(Plug and Charge) 기능도 탑재해 충전 편의성도 높였다. 벤츠의 대형 전기세단 ‘EQS’와 준중형 전기 SUV ‘EQB’가 10%에서 80%까지 충전 시 30분이 걸리는 것보다 빠르다. 포르셰 타이칸은 급속충전 5분이면 100㎞ 주행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포르셰는 충전속도를 높여주는 실리콘 음극재가 적용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전기차 배터리를 10년, 20만㎞까지 보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통상 전기차는 10만㎞ 이상 타면 배터리 성능이 10~20% 저하될 수 있다. 또 현재 양산 전기차에 탑재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이나 충격에 약해 폭발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2030년 전후로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이 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서는 한편, 차량 밑에 깔린 배터리팩을 최대한 보호하고 충돌을 흡수하는 설계 경쟁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는 배터리 하부 커버가 긁히거나 파손되지 않도록 티타늄 소재로 만들고 있다. 현대차는 충돌 때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는 설계에 중점을 뒀다. 허재호 현대차 상무는 “아이오닉6는 전방 충돌 에너지를 분산하는 다중 골격 구조와 함께, 측면 충돌에 대응하기 위한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를 적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