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반도체 공장을 늘리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현지 시각)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를 인용, 중국이 2024년까지 반도체 공장을 31곳 건설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대만(19곳)과 미국(12곳)의 신설 계획을 크게 앞서는 규모다.
한국·대만·미국이 첨단 반도체 경쟁에 몰입한 사이, 중국은 차량용 같은 중저가 반도체 산업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특히 중국 최대 반도체 회사 SMIC가 중저가 중에선 고부가 제품인 ‘28나노 반도체’ 투자에 집중하면서, 작년 15%였던 중국의 28나노 반도체 점유율이 2025년 40%까지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수립한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집중 육성한 반도체·전기차·인공지능·바이오 같은 첨단 산업에서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분야는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과 기술 패권을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배터리 기술 한국 위협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BYD는 지난 21일 일본 승용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내년 1월 전기 SUV ‘아토 3′ 출시를 시작으로 전기차 3종을 판매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도요타)가 있는 제조 선진국 일본과 맞붙겠다는 발표는 중국이 더 이상 ‘제조 2류’가 아니라는 상징적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BYD는 내년 한국 진출도 준비 중으로, 최근 6개 차종의 상표권을 등록하고 인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중국 CATL은 원래 자국 시장이 주 무대였지만, 최근엔 기술력을 인정받아 테슬라·벤츠·포드 같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에 납품을 확대 중이다. 최근 현대차그룹도 신형 니로 전기차를 시작으로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가인 리튬인산철배터리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중국이 배터리 소재조달·생산 능력뿐 아니라 설계·연구 개발 등 전체 점수에서 한국(종합 86점)보다 나은 세계 1위(95.7점)로 평가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인공지능·자율 주행, 바이오는 미국과 기술 주도권 경쟁
인공지능(AI) 분야에선 한국을 이미 추월해, 선두인 미국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2030년까지 AI 최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다. 미 스탠퍼드대에 따르면, 중국은 AI 논문 발표와 AI 특허 출원 등 양(量)적으론 이미 세계 1위다. 유럽의 기술 수준도 제친 상태다(정보통신기획평가원 분석).
이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불리는 중국 대표 IT 기업들이 자율차·스마트시티·헬스케어 등 핵심 분야를 꿰차고 관련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를 지속하며 생태계를 빠르게 키워나간 결과다. 특히 중국은 안면 인식·음성 인식 분야에선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안면 인식 기술로 유명한 중국 최대 AI 업체 센스타임은 작년 말 미국 재무부의 투자 제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홍콩 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 13조원대를 기록 중이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결국 AI는 그 학습 재료가 되는 빅데이터의 질과 양이 핵심 경쟁력”이라며 “중국은 거대 시장과 인구를 갖춘 데다 상대적으로 윤리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고 했다.
자율 주행 기술에서도 미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두는 지난 21일 자사 자율 주행 택시인 ‘아폴로’ 차량 가격을 기존 대비 절반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무인 주행이 가능한 이 로보택시의 가격은 25만위안(약 4849만원)이다. 전 세계에서 무인 택시를 운행하는 업체는 미국 웨이모와 크루즈 정도인데, 이들은 바이두만큼 저렴한 로보택시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에서도 중국의 기술력은 최근 한국을 앞질렀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5월 ‘바이오 경제 5개년 계획’을 처음 발표하는 등 국가 주도의 대대적 추격에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임상 시험 대행 및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업체인 야오밍캉더(우시앱텍)는 시가총액이 약 50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