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인근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운행하는 무료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 택시를 타봤다. 카카오T 앱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2분 정도 기다리자 차가 출발지 앞에 섰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차는 우회전할 때 보행자 신호가 녹색이면 주행을 멈췄다. 가속·감속이 조금 거칠었지만, 부드럽게 차선을 변경하기도 했다. 초보 운전자 수준의 운전 실력이었다. 하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긴급 상황에 개입할 연구원이 탑승해 있었고, 자율차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10㎞에 불과해 전체 주행 가능 구간을 도는 데 10분 정도 걸렸다. 운행 대수도 1대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중국에선 운전석에 사람이 없이도 주행 가능한 레벨4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 사업이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GM의 자회사 크루즈는 지난 6월부터 세계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전석에 사람이 아예 없는 자율주행 택시 30대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도 지난 8일 충칭과 우한 시(市)정부로부터 자율주행 택시 운행 허가를 받고, 10대 이상 차량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테스트를 위한 시범주행이 아니라, 승객이 돈을 내고 자율주행 택시를 타는 서비스 상용화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자율주행차(레벨4 이상) 서비스를 내놓은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아직 시범운행 수준이고, 축적된 자율주행 데이터 수준도 중국의 3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미래차 핵심 경쟁력으로 자율주행기술을 꼽고 출시하는 차량에도 자율주행 시스템을 앞다퉈 탑재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이 미래차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자율주행차 240대, 미·중 1400대 이상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임시운행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는 약 240대다. 그나마 수리와 정비 등 이유로 모두 운행 중인 것도 아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모두 1400대 이상 자율차가 도시를 누비고 있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가 애리조나에서 테스트 중인 자율차만 300대가 넘는다. 운행 대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자율주행차의 누적 주행 거리도 미국 웨이모는 3200만㎞, 중국 바이두는 2100만㎞가 넘는다. 국내 업체 전체 주행 거리 합계가 72만㎞인 것과 비교하면 수십배 수준이고, 이 격차는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크루즈와 바이두 같은 ‘사람이 없는 자율차 서비스’는 정부 허가를 얻으면 출시가 가능하다. 서울의 강남·상암과 세종·제주 등 자율주행 특례지구 13곳이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레벨 4 자율주행 서비스를 상용화하겠다고 국토부에 신청을 한 기업이 현재까지 없는 상황이다. 한 자율주행업체 관계자는 “자율주행 규제는 2020년 전후로 대부분 완화됐지만, 국내 기업의 기술과 자본력이 받쳐주지 못해 기술 고도화가 더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양산 비용, 중국의 4배
국내에서는 현대차 외에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는 레벨4 자율주행차 양산을 목적으로 공장 건설과 부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오토노머스가 예상하는 자율차 1대 생산 비용은 약 2억원. 중국 바이두의 대당 생산비용(약 4800만원)의 4배 수준이다. 한지형 오토노머스 대표는 “국내 부품 생태계가 대기업 벤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소품종 미래차 부품을 만들려고 하질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시장의 자금력 차이도 크다. 크루즈의 올해 1분기 적자만 3억2500만 달러(약 4200억원)에 달한다. 크루즈는 매분기 자율주행 테스트와 서비스 고도화에 2000억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200억~3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한 기업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최근 투자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자율주행 업계는 기업 간 협업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율차는 5G 통신망과 각종 IT 서비스와 연동되기 때문에, 기업 간 투자와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바이두는 최근 중국 우한의 321㎞ 도로 전체에 센서를 설치하고 5G 통신망과 연결해 자율차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통신사·인프라 기업들과의 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정구민 국민대 교수는 “자금과 기술을 갖춘 국내 대기업들이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율차 투자와 협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자율주행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기업들의 활발한 자율주행 투자와 기술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