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이 유럽 최대 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CATL은 총 73억유로(약 10조원)을 투자해 헝가리 데브르텐에 연간 생산용량 10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새 공장은 CATL의 두 번째 유럽 공장으로, 현재 유럽 최대 공장으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연간 생산 규모 70GWh)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지난해 CATL의 전체 생산 규모가 170GWh인 것을 고려하면 깜짝 놀랄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북미 시장 진출을 노리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유럽 시장 공략으로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데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이름으로 전기차 보조금에서 중국업체 배터리를 배제하면서 미국 진출이 막힌 탓이다. CATL만 해도 당초 7조원 규모 북미 공장을 추진했지만 이를 보류한 뒤 보름도 안 돼 대규모 유럽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 2위 배터리 업체 BYD도 테슬라 독일 공장에 배터리 납품을 시작하며 유럽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거센 공세는 지난해 유럽 시장 점유율이 81%(SNE리서치 조사)에 이르는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엔 달갑잖은 소식이다. 이에 더해 유럽 기업들도 ‘배터리 자립’을 내걸고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유럽 시장을 둘러싼 ‘한·중·유럽’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테슬라 이젠 BYD 배터리도 사용, 벤츠도 CATL 배터리 탑재
CATL이 짓는 헝가리 공장의 최대 고객은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가 될 예정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벤츠는 이번 CATL 공장에 일부 지분을 투자하기도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벤츠 모회사(다임러)의 최대 주주가 베이징자동차일 정도로 중국과 유럽 자동차 산업의 관계는 끈끈하다”며 “폴크스바겐도 중국이 주력인 각형 배터리 탑재를 확대하면서 중국 배터리의 유럽 공급이 급속도로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중국 매체 시나테크에 따르면 중국 2위의 배터리 제조 기업이자 최대 전기차 기업인 BYD는 테슬라 독일 공장에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BYD 배터리는 이달 중 생산될 모델Y에 탑재될 예정이다. 테슬라는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에는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BYD 배터리를 탑재하는 건 처음이다. BYD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테슬라와 경쟁하고 있지만, 테슬라는 판매가가 1억원을 넘긴 모델Y의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BYD 배터리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배터리가 한국의 주력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입지를 위협하는 것이다.
◇배터리 자립에 나서는 유럽, 선두 지키려는 한국
배터리 자립을 위한 유럽의 자체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신생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 영국의 브리티시볼트 같은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노스볼트는 올해 5월 첫 원통형 배터리 양산에 성공했으며, 유럽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폴크스바겐과 BMW 등 유럽 주요 자동차 기업과 잇따라 공급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 벤츠와 스텔란티스는 70억유로(약 9조3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배터리 자체 생산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한국도 거세지는 중국과 유럽의 공세에 맞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작년 말부터 폴란드 공장을 증설 중이다. 증설 규모는 연 생산량 기준 약 30GWh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헝가리 괴드 공장 증설에 약 1조원을 투자했고, 하반기 헝가리 두 번째 공장이 가동을 시작한다. SK온도 약 3조원을 투자해 헝가리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