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현지 시각) 중국 쓰촨성 이빈에서 열린 ‘2022 세계 배터리 콘퍼런스’. 이 자리에선 전기차업체와 배터리업체 최고 경영진이 설전을 벌이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쩡칭훙 광저우자동차 회장은 “배터리 값이 계속 상승해 전기차 비용의 60%를 차지한다”며 “(완성차업체가) 배터리업체 CATL을 위해 일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애써 전기차를 팔아도 배터리 값이 너무 비싸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강한 불만 표시였다.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CATL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쩡위췬 CATL 회장은 “리튬 같은 원자재 값 상승이 자동차업계에 가격 연쇄 상승을 불러왔다”며 리튬업체로 화살을 돌렸다. CATL의 우카이 수석과학자도 “적자를 내진 않았지만 CATL도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CATL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3.6% 줄었고,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도 4%에 그쳤다.
업계에선 이 장면을 두고 “떠오르는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모순적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차량과 배터리 가격이 모두 치솟고 있지만 완성차업체나 배터리업체 모두 대박은커녕 오히려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빨간불 켜진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
전기차 확산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완성차·배터리업체 재무제표엔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판매처로 둔 중국 업체들마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중국 시나닷컴은 “니오, 리오토, 샤오펑 등 전기차 주력 업체들이 올해 1분기 모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며 “전기차 판매는 늘고 있지만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손실의 주범으로 치솟는 배터리 가격을 꼽는다. 전기차 제조 비용 중 배터리 가격이 절반을 넘어서며 이익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킬로와트시(kWh)당 배터리 가격은 132달러였지만 올해는 15% 이상 올랐다. 이날 쩡칭훙 회장 외에도 주화룽창안자동차 회장,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도 배터리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배터리업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세계 최고 배터리 기업인 CATL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3.6% 줄어든 14억9300만위안(약 2904억원)에 그쳤다. CATL뿐 아니라 궈쉬안하이테크와 신왕다 등도 20~30%씩 순이익이 줄었다. 불완전한 기술 탓에 화재, 리콜 발생 같은 우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부담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GM에 납품한 배터리에서 결함이 발견돼 각각 6900억원과 7000억원의 리콜 비용을 지급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매출은 늘지만 원자재 가격 증가 탓에 이익은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1분기보다 2분기가 나빴고 하반기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뒤에서 웃는 리튬 업체
홀로 웃는 것은 원자재 기업, 특히 리튬 생산업체들이다. 전기차 판매 이익이 대부분은 이 업체들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 톈치 리튬은 1분기 영업이익이 52억5700만위안(약 1조22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81.4% 늘었고, 이웨이 리튬 에너지의 영업이익도 60억7340만위안(약 1조1812억원)을 기록해 같은 기간 127.6% 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이 2020년 초 이후 8배 이상 급등했다”며 “앞으로 완성차·배터리업체들은 리튬 확보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리튬이 다른 원자재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건 대체재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니켈과 망간, 코발트는 인산, 철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리튬은 어느 배터리에나 필수로 들어간다. 최근 니켈, 망간 등 다른 원자재 가격이 인플레 영향으로 하락했음에도 리튬 가격은 요지부동인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이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리튬 채굴은 초기 타당성 조사에서 실제 생산까지 6~19년 소요된다. 배터리 관련 원자재 가운데 생산을 위한 공정이 가장 긴 편에 속한다. 리튬사 앨버말의 켄트 마스터스 CEO는 “향후 7~8년간 빡빡한 리튬 수급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