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 감축법은 한국에 명백한 차별입니다. 우리 자동차 생태계가 도태될 수도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 외교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최근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대규모 투자 선물 보따리를 내놓은 우리 기업으로선 배신감마저 들게 하는 정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회장은 “인플레 감축법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졸속 통과된 만큼, 앞으로 수정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인플레 감축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핵심 공약을 담은 ‘더 나은 재건법’이 지난달 급하게 수정됐고, 이후 충분한 토론 없이 시행됐다는 것이 업계 판단이다. 법은 지난 7일(현지 시각) 상원, 12일 하원을 통과했고, 16일 대통령 서명·발효까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정 회장은 미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등을 근거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득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하는 조립 조건을 미국이 아닌 ‘북미’로 한 것은 미국 자동차 ‘빅3(GM·포드·스텔란티스)′ 공장이 멕시코·캐나다에 많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을 북미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캐나다·멕시코)과 다른 대우를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므로 한국산도 같은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한국은 미국의 강력한 경제 안보 동맹국임을 강조해야 한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칩4 동맹’ ‘배터리 공급망 동맹’에 적극 참여 의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이번 인플레 감축법에 “미국이 미래 핵심 산업(전기차)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며 “현대차가 최근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 다음인 2위를 기록하자, 이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 법안으로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이 가장 큰 특혜를 받았으며, 반대로 한국GM은 미국 본사에서 전기차 배정을 받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한국GM에서 생산한 전기차는 미국에서 보조금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는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는 국내 자동차 업계를 더 힘들게 한다”고 했다.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는 국내 완성차·수입차 업체들이 전기차를 일정 비율 팔지 않으면 대신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한국GM·르노코리아·쌍용차는 올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 내년 벌금 수십억 원을 물어야 할 처지다. 정 회장은 “한국GM과 르노코리아는 본사 전기차를 수입 판매할 수밖에 없다”며 “모두가 자국 전기차 산업을 키우려 혈안인데, 우리는 반대로 전기차 수입을 유도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서 한국산을 차별하는 나라는 우리도 차별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보조금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