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확산으로 배터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리튬 가격이 다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30일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 소재인 탄산리튬 국제 가격은 kg당 475위안(약 9만3000원)을 기록하면서 지난 4월 전고점 472위안을 뛰어넘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광물인 리튬 가격은 작년 8월(110위안) 대비 4배 이상이 됐고, 3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9배 수준이다. 최근 블룸버그는 “중국 리튬 채굴·정제 공급망의 20% 이상을 담당하는 쓰촨성 일대 가뭄과 정전으로 리튬 정제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며 “배터리 수요에 더해 악재까지 겹쳐 하반기 리튬 가격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리튬은 배터리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하기 어려운 자원이다. 한국의 주력 삼원계 배터리, 중국의 주력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미래 기술이라는 전고체 배터리 모두 리튬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동화 시대의 하얀 석유’라 불린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리튬 광산을 사들인 중국이 리튬 채굴·정제 시장의 과반을 점유한 데다, 전 세계 리튬의 절반 이상이 매장된 남미 국가들이 리튬 채굴 사업 국유화에 나서면서 리튬 확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석유와 달리 리튬은 칠레·아르헨티나 등 한정된 국가에서만 나오는 광물”이라며 “기업들이 리튬 광산과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공급망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리튬, 중국이 정제 시장 60% 장악… 중국, 리튬 광산 무차별 인수 칠레·멕시코는 자원 국유화 움직임
지난달 중국 최대 리튬 채굴·정제업체인 중국 간펑리튬은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업체 리티아를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간펑리튬은 아르헨티나 광산에서 앞으로 연간 리튬 5만t을 채굴할 계획이다. 작년 전 세계 리튬 총생산량이 50만t인 것을 고려하면 글로벌 리튬 채굴량의 약 10%를 추가로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간펑리튬은 호주·멕시코·아일랜드 등 해외 주요 리튬 광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또 다른 중국 업체 톈치리튬은 호주 광산과 칠레 최대 리튬업체 SQM의 지분 24%을 갖고 있다. 2010년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배터리 광물에 투자한 중국 기업들은 이렇게 확보한 리튬을 정제해 주요 배터리 기업에 공급한다. 세계 리튬 채굴량 중 중국 비율은 13%에 불과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정제 리튬 세계 시장 점유율은 60% 내외(블룸버그·BMI 등 조사)에 육박한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리튬 매장량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중남미 국가에서는 리튬 채굴을 국유화하려는 자원민족주의 움직임이 거세다. 좌파 정부가 집권한 칠레는 다음 달 국민투표에 부쳐 국가가 광업에 개입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국영 리튬 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멕시코 정부는 6개월 이내 국영 리튬 회사 운영을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고, 볼리비아는 이미 리튬 광산을 국유화했다. 리튬이 돈이 되자 서둘러 국유화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간펑리튬의 영업이익(약 78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8배 증가했고,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은 75%에 달했다.
◇니켈·코발트도 자원 무기화 가능성 있어
다른 주요 배터리 광물도 무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주력 배터리인 삼원계 배터리의 핵심 광물 니켈도 인도네시아가 2020년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니켈 수출세를 매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코발트 매장량의 절반 이상은 콩고민주공화국에 편중되어 있고, 가공 대부분은 중국에서 이뤄진다.
한국은 리튬을 채굴·정제하는 기술이 없는 상태라 중국산 정제 리튬 기반 중간재를 배터리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올해 1~7월 배터리 핵심 소재(수산화리튬·코발트·흑연)의 중국산 수입 비율이 모두 80%가 넘은 이유다. 리튬 원자재 확보에 뒤처진 한국은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염호 개발에 나서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도 호주 광산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호주 같은 자원 부국과 접점을 늘리면서, 정부가 자원민족주의에 대응하는 외교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기업들도 차세대 배터리용 광물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배터리 자원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