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능력 확대를 위해 미국과 일본에 7300억엔(약 7조원)을 투자한다고 31일 밝혔다. 도요타는 특히 타 완성차업체들이 주요 배터리회사들과 합작 공장을 세우는 것과 달리, 독자적으로 공장을 짓고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다소 늦다는 평가를 받아온 도요타가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차별화된 전기차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지난해 12월 전기차 전략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공개할 전기차를 소개하고 있다. 도요타는 2030년 전기차 세계 판매 목표를 기존 200만대에서 350만대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토요타자동차 제공

◇미·일 배터리 생산시설에 20조원 투자

도요타는 일본에 4000억엔, 미국에 3300억엔을 투자한다. 2024~2026년 생산 개시가 목표이고, 미국·일본을 합쳐 최대 40GWh 규모 생산 능력을 증강한다는 계획이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배터리 생산설비에만 2조엔(약 20조원)을 투자해 280GWh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번 투자는 이 계획의 일환이다.

도요타는 앞서 작년 11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1430억엔을 들여 ‘하이브리드용 전지’ 공장(총 4개 라인)을 짓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 투자 발표로 전기차용 생산라인 2개를 추가하게 된다. 고용인원도 당초 1750명에서 350명이 추가된다.

특이한 점은 도요타가 미국 배터리 공장을 독자적으로 짓는 것이다. 미 배터리 공장은 도요타 종합상사 자회사인 ‘도요타통상’이 지분 10%를 참여한 것이 전부인데, 도요타통상은 배터리 재료 조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동안 완성차업체들은 배터리 자체 제조능력이 없어 배터리회사와 합작해왔다. GM·포드가 LG·SK와 합작 공장을 지어왔고, 일본 2위업체 혼다도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계획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1997년 하이브리드차를 만들면서 배터리 제조 능력을 자체 구축해왔다. 파나소닉과 1996년 6대4로 지분을 나눈 합작사 PEVE를 설립해 기술을 내재화한 것이다. 도요타는 일본 내에선 파나소닉과의 또다른 합작사인 프라임플래닛의 히메지 공장과 도요타의 기존 공장·소유지에 배터리 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도요타는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따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는데, 미국 내에 이미 10개에 달하는 기존 공장을 활용해 생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도요타가 최근 출시한 첫 순수 전기차 'bZ4X'./도요타 제공

◇배터리 재료는 이미 확보… ‘배터리 내구성’이 최대 목표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은 작년 12월 연간 전기차 350만대 판매 전략을 발표하면서 “필요한 원료는 다 계약해 놓았다”고 밝혔다. 실제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를 만들면서 배터리 자원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자원 확보에 나서왔다. 그 역할을 도요타통상이 하고 있다.

도요타통상은 2009년 회사 내에 금속자원부를 만들고 2010년부터 아르헨티나 오라로즈 염호의 리튬 채굴권이 있는 호주 자원회사 오로코브레라와 협력을 강화해왔다. 2018년에는 합작사를 만들어 리튬을 채굴하고 있다. 오라로즈 염호에는 깊이 200m까지만 채굴해도 100년간 6만t씩 채굴할 수 있는 리튬이 매장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가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배터리 내구성’이다. 화재가 나면 안될 뿐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해도 충전능력이 지속 유지돼야한다는 것이 도요타 생각이다. 도요타는 최근 출시한 차세대 전기차 BZ4X의 배터리에 10년간 100만km의 보증을 해주고 있다. 보증기간이 긴 편인 현대차가 아이오닉5에 ‘10년, 20만km’의 보증을 제공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한편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 시행으로 현대차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탈락해 타격을 입은 사이, 전기차 전환 속도에서 뒤처진 일본 업체들이 빠른 추격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29일 혼다는 LG에너지솔루션과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전기차 공장이 2024년 10월 가동이 목표인 것을 감안하면 시점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