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임단협이 난항을 겪고 있다. 임금(월 9만8000원 기본급 인상)이나 성과급(300%+550만원)은 회사와 노조 집행부간 일찌감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퇴직자에게 평생 신차를 할인 판매해주는 현대차·기아의 ‘평생 사원증’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평생 사원증은 현대차그룹 퇴직자들의 복지 제도다.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는 2년마다 할인된 가격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 현대차 퇴직자는 25%, 기아는 30% 할인을 받는다. 기아 퇴직자가 5000만원짜리 차량을 제조 원가보다도 낮은 3500만원에 구매하는 것이다. 신차를 할인된 가격에 받아 2년을 타다가 중고차로 팔아도 이득이니, 퇴직자들은 2년마다 차를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임단협에서 사측과 노조 집행부는 평생 사원증 제도를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평생 할인 대신 75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하고, 할인율도 25%로 낮추는 내용이다. 할인 주기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대신 임금피크제에 따라 59세 근로자 기본급의 90%를 주던 60세(정년) 임금을 95%로 올렸다. 그러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 사원들이 “평생 사원증은 장기 근속 퇴직자에 대한 예우인데 축소는 안 된다”고 반발하면서 지난 2일 협상안은 부결됐고, 임단협은 재협상이 진행 중이다.
평생 사원증 제도 축소를 둘러싼 논란은 기아 직원들 세대 간 노노(勞勞)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고령층 직원 반발에 대해 젊은 직원들은 “언제 퇴사할지도 모르고, 혜택을 받을지도 모르는 평생 사원증 문제로 임단협이 부결되면서 당장 성과금 수령에 문제가 생겼다”고 불만이다. 반면 간부 사원 노조 등 고참 직원들은 제도 축소에 반대하면서 “퇴직자들에게도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아의 인력 구성은 역피라미드다. 지난해 기준으로 50세 이상이 1만8874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전체 3만4104명 근로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22년 2개월에 달한다. 고참 사원이 임단협 등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인력 구조와 퇴직 후 복지제도 때문에 역대 최대 수준의 임금 인상안이 부결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평생 30% 할인’은 지나친 혜택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 2분기 기준 기아의 매출원가율(매출에서 원가의 비율)은 79.1%다. 100원에 차를 팔면 79.1원이 원가로 지출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판매 및 관리비까지 더하면 기아가 가져가는 이익은 더 떨어진다. 30% 할인으로 회사가 떠안는 손실은 결국 소비자 차량 가격에 전가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재직자도 아닌 퇴직자에게 평생 30% 할인을 제공한다는 건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혜택”이라고 했다.
사측도 임단협 부결은 예상 못 했다는 분위기다. 애초 사측은 7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도를 고려하고,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협의안을 제시했다. 노조 집행부도 이에 공감했기 때문에 낙관적인 타결이 관측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해외 전기차 생산 문제가 국내 공장 차량 배분 등 노사 문제와 연동 돼 있다”며 “아직도 단체 협상에 매여 있어 갑갑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