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럭셔리카 브랜드 포르쉐(PORSCHE)의 로고. /AFP 연합뉴스

독일 수퍼카 브랜드 포르셰가 100조원이 넘는 가치로 상장한다. 포르셰는 29일 독일 프랑프푸르트 증시에 상장을 예고했는데, 최대 기업가치는 최대 750억유로(약 105조원)로 유럽 IPO(기업공개) 역사상 셋째로 큰 규모다. 모회사 폴크스바겐의 시가총액(890억유로)과 맞먹는 수준이다.

포르셰의 모회사 폴크스바겐은 “포르셰는 주당 가격 76~82유로(약 11만원), 전체 주식의 12.5%를 공모할 계획”이라며 “최대 13조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18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미 카타르 투자청, 아부다비 국부펀드 등 글로벌 큰손들이 지분 매수에 합의한 상태로 시장에선 포르셰의 가치가 9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포르셰는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50%를 기존 폴크스바겐 주주들에게 특별 배당금 형식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전기차와 배터리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이 알짜 회사인 포르셰를 상장하는 이유는 단순 전기차 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앞서 이탈리아의 대표 수퍼카 브랜드인 페라리는 2015년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페라리의 현재 시가총액은 380억 유로(약50조원)에 달한다. 페라리는 지난해 1만1155대의 차량을 팔았다. 현대차의 연간 판매량(약400만대)의 400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현대차 40조원)은 페라리가 더 크다. 단순 자동차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럭셔리 명품의 가치가 인정 받은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페라리와 포르셰 모두 영업이익률이 15%를 웃돌 정도로 수익성이 우수하다”며 “전기차가 소품종 대량생산이 되는 미래에 수퍼카는 명품 브랜드처럼 높은 희소성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는 시대, 페라리·람보르기니·포르셰로 대표되는 수퍼카 브랜드들은 어떤 전략을 짜고 있을까.

◇ 미래 수퍼카 브랜드의 미래는 100조 상장 통해 명품 브랜드 가치 인정 받으려는 포르셰

미국 LA 시내 포르셰 매장에 전시된 포르셰 차량들 /AFP연합뉴스

포르셰는 연간 30만대 이상 차량을 판매한다. 페라리 판매량의 30배에 가깝다. 포르셰 차량은 1억원 내외부터 구매가 가능하지만, 페라리는 3억원 이상을 줘야 할 수 있고 생산 물량 자체를 통제하고 있다. 포르셰의 영업이익률을 18% 내외지만, 더 비싼 페라리는 25%를 넘는다. 비싸고 희소할수록 가치가 인정 받는 일종의 명품 마케팅이 통한 셈이다.

포르셰도 이번 상장 때 페라리를 비롯해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 상장을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오방카를 IPO 고문으로 고용했다. 그만큼 기술력으로 인정 받는 것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짜고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서다.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를 찍어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생산 라인)을 개발하고, 이 플랫폼에서 소품종 대량 양산을 하는 방식으로 전기차를 생산한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 희소성이 높은 명품에 대한 수요는 끊임이 없다. 실제 페라리의 판매량은 지난해 22%가 늘었다. 포르셰·페라리·람보르기니 등으로 대표되는 수퍼카 회사들은 전기차로 넘어가는 시대에 럭셔리 브랜드로서 가치를 다지려고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4도어 SUV 내놓은 페라리

페라리가 공개한 SUV '푸로산그' /페라리

반대로 75년 동안 정통 스포츠카 생산만을 고집해왔던 페라리는 이달 13일 브랜드 최초로 4도어 모델 ‘푸로산그’를 공개했다. 스포츠카 형태가 아니라 포르셰의 마칸처럼 SUV와 세단의 사이쯤 있는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포르셰가 4도어 세단(파나메라)와 SUV(카이옌·마칸)을 내놓아 판매량이 크게 늘렸고, 람로브기니가 뒤를 이어 SUV 우루스를 내놓아 재미를 봤던 것과 달리 페라리는 정통 스포츠카만 만들어왔다. 하지만 다른 회사와의 경쟁, 시장의 니즈에 발 맞춰 4도어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페라리는 “푸로산그는 SUV가 아니라, 페라리다”라고 주장하지만, 외신들은 결국 SUV를 내놓은 페라리의 전략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푸로산그는 12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페라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 등 일부 차량에 소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장기적으로 전기차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여전히 주력 차량은 내연기관이다. 최근 SUV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부쩍 늘었고, 스포츠카는 유지·관리와 일상 주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페라리가 시장의 니즈에 발맞춰 대중적인 내연기관차를 생산해 소비자 접점을 늘리려는 전략 변화라는 것이다.

페라리는 대중 차량보다 스포츠카와 레이싱카로서의 가치를 더 인정 받는다. 사진은 지난 7월 포뮬러1 대회에서 주행 중인 페라리 차량 /AFP연합뉴스

◇전동화 박차 가하는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의 황소 마크 /로이터

포르셰와 함께 폴크스바겐 그룹 산하인 이탈리아 람보르기니는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람보르기니는 내년부터 아벤타도르·우라칸 등 주력 차량에 폴크스바겐 전기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차량 생산에 들어간다. 올해초 2024년까지 전체 판매 차량에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약 15억 유로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유럽 최대 제조사 폴크스바겐가 보유한 전기차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한 것이다.

슈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올해초 “이미 생산해 둔 내연기관차는 모두 인도를 완료했다”며 “우리가 내연기관 엔진 자동차만을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