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포르셰, 람보르기니는 최근 5년간 국내 시장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수입차 업체다. 벤츠는 지난해 수입차 최초로 매출 6조원을 돌파했고 새로운 ‘강남 쏘나타’로 불리는 포르셰는 매출 1조원 벽을 넘었다. 람보르기니는 수억원대 판매 가격에도 지난 5년간 판매량이 13배 늘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수입차의 국내 판매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홍콩 소재의 법인 ‘레이싱홍’이라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오너인 라우초쿤(86) 회장은 한국 수입차 업계에서 ‘수입차의 제왕’으로 불린다. 한 수입차 업체 임원은 “국내에서 수입차는 이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살 수도 팔 수도 없다”고 단언했다.
말레이시아 화교로 현지 재벌 합셍그룹 회장인 그는 1985년부터 한국에서 벤츠 판매를 시작해 포르셰, 람보르기니의 국내 판권을 차례로 손에 넣었다. 라우초쿤은 벤츠 한국 지사인 벤츠코리아와 벤츠와 포르셰의 한국 최대 딜러사, 람보르기니의 국내 단독 딜러사의 대주주다. 그가 한국에 두고 있는 계열사만 10개가 넘고, 여기서 나오는 매출만 10조원을 웃돈다. 벤츠의 경우 한국에 11개 딜러사가 있지만 그가 세운 한성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절반에 이른다.
◇라우초쿤이 장악한 한국 수입차 시장
국내 수입차 판매는 수입차의 한국 법인과 딜러사라는 이중 유통 구조를 통해 이뤄진다. 벤츠코리아, 포르셰코리아 같은 수입사가 벤츠, 포르셰 본사로부터 완성차를 수입하고 여기에 마진을 붙여 딜러사에 판다. 딜러사는 다시 한번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최종 판매하는 것이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사와 딜러사가 각각 10~15% 마진을 취하는 구조”라고 했다.
라우초쿤은 홍콩에 세운 ‘레이싱홍’이란 회사를 통해 한국 수입차 유통 기업들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7만대가량의 차를 판매하는 벤츠의 수입사와 딜러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 벤츠의 한국 법인인 벤츠코리아의 경우 지분 49%를 확보해 지분 51%를 보유한 독일 다임러 본사에 이은 2대 주주다. 금융사인 메르세데스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지분 20%도 갖고 있다. 벤츠의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또 다른 딜러사인 한성모터스, 스타자동차도 모두 라우초쿤의 회사가 최대 주주다. 벤츠코리아(6조1212억원), 한성자동차(3조3285억원), 한성모터스(4269억원), 스타자동차(3712억원)를 합치면 매출이 10조원이 넘는다. 람보르기니의 독점 딜러사인 SQDA, 포르쉐 최대 딜러사인 SSCL도 라우초쿤이 지배하는 회사다.
라우초쿤은 한국 부동산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부동산 투자사인 한성인베스트먼트 소유 토지, 건물 자산만 8500억원대에 달하고 임대 수익으로만 연 550억원가량을 번다.
◇한성(韓星)이름도 직접 작명
포브스에 따르면 라우초쿤은 보유 자산 3조원으로 말레이시아 10위의 부자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합셍그룹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호주 등지에서 자동차 판매업, 농업, 부동산 투자, 금융, 무역업 같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한국에 벤츠코리아 등 수입차 법인이 세워지기도 전인 1985년이다. 라우초쿤은 당시 ‘한국의 별’이라는 뜻의 한성(韓星)이란 이름을 짓고 한성자동차를 세워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벤츠 트럭 등을 취급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수입차 업계를 좌우하지만 라우초쿤과 회사 관계자들은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드문 사례가 2013년 국회 국정감사 때였다. 한성자동차가 서울 강남, 청담, 삼성 등지에 목 좋은 전시장을 선점하고 물량 확보 면에서도 우선권을 쥔 채 과도한 이득을 내고 있다는 다른 딜러사들의 불만이 들끓자, 국회가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낸 것이다. 화교인 그는 당시 영어로 “투자 회사인 한성인베스트먼트는 한성자동차와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가 위증죄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