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는 독일 북부의 파펜부르크에 있는 자사 자동차 주행 테스트 트랙에 2025년까지 풍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 풍력발전소를 통해 독일에서 벤츠가 필요로 하는 연간 전력 15% 이상인 100MWh를 생산할 계획이다. 벤츠는 또 이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을 포함, 2025년까지 태양광 발전 시스템 확대를 위해 수백만 유로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벤츠는 2030년까지 자체 에너지 수요의 7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 아래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벤츠가 에너지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유럽 에너지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기업의 에너지 자립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화석연료에서 탈피해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돌리지 않으면 글로벌 환경 규제에 따른 불이익에 직면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벤츠 뿐 아니다.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에너지 자립, 더 나아가 에너지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GM 에너지사업부 신설, 수백조원 시장 겨냥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GM은 최근 ‘GM에너지’라는 이름의 사업부를 신설했다. 가정용·기업용 배터리팩, 태양광 패널, 전기차 충전기, 에너지 관리 솔루션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위해서다. 브랜드는 GM의 배터리 브랜드인 ‘얼티엄’으로 정했다. GM은 “우리가 축적한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자체 태양광 발전 및 저장 시스템을 개인과 기업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가 태양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ESS(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처럼, 비슷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GM이 에너지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미국에서 최근 정전이 빈번해지면서 전력망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텍사스주는 이례적인 혹한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맞았고, 최근 캘리포니아주는 산불과 폭염·가뭄에 따른 전력난으로 최근 전기차 소유주들에게 낮 시간동안 전기차 충전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비상 조치를 취했다.
GM은 공장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자체 조달해 초과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하는 한편, 일반 주민과 다른 기업 및 도시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GM의 트레비스 헤스터 부사장은 “정전의 영향을 줄이고, 비용이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할 것”이라며 “우리가 목표로하는 제품·서비스 규모는 약 180조원~360조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예기치 않은 정전이 발생하면 차량이나 ESS를 사용해 가정이나 소규모 기업,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GM의 경쟁자인 포드 역시 비슷한 사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제조 기술을 내재화하는 한편, 자동차의 원동력인 에너지 기술까지 축적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도 에너지 사업 관심
현대차그룹도 에너지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올초 울산공장에 LNG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해 울산공장 필요 전력 70%를 자급할 계획을 세웠다가 최근 철회했다. 지난 6월 유럽연합(EU) 의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LNG) 발전이 포함된 녹색분류체계 안에 반대 결의를 하면서, LNG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 움직임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에너지 자급과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위한 다른 방안을 계속 검토중이다. 먼저 공장에서의 친환경 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 체코 공장은 올해 말까지 100%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태양광 발전 설비 등을 확대하고 있다. 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때는 설계 단계부터 재생에너지 100% 적용 공장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도 최근 울산·대구·김천·창원 등 국내 주요 공장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했다. 총 4곳의 공장에 최대출력 485W인 태양광 모듈 5190개가 투입돼, 연간 3308MWh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매달 1만여 가구(4인 가구 월평균 전력 사용량 307kWh 기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현대모비스는 전세계 사업장을 2030년 65%, 2040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폐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하는 실증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주축이 돼 폐배터리를 폐차장과 딜러사로부터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사업을 주도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제조 단계부터 탄소배출을 고려해야하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중요하다”며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급을 위한 투자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기차 배터리 기술과 폐배터리를 활용해 에너지 저장, 공급 사업을 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며 “자동차 업체들이 에너지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