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화가 프로그램 미드저니에서 기자가 직접 그림을 그려보도록 명령하자 출력된 이미지 파일 /임경업 기자

“/imagine : prompt : Human Being Addicted to Smartphones, in the style of Pablo Picasso(스마트폰에 중독된 인간, 파블로 피카소 스타일로 상상해서 출력)”

AI화가 프로그램 ‘미드저니’에 기자가 지난 16일 입력한 간단한 명령어 한 줄이다. 3분 정도 몇 번의 명령이 오간 뒤, 최종적으로 AI 화가는 위와 같은 그림을 보여줬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것처럼 인간의 눈은 퀭하고, 머리카락 부분을 자세히 보면 스마트폰의 노치가 보이는 것도 알 수 있다. 단순 사진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명령을 내려도 AI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AI화가 프로그램 미드저니에서 기자가 직접 그림을 그려보도록 명령하자 출력된 이미지 파일

첫 명령어를 입력하자 미드저니는 파블로 피카소 스타일로 그린 여러 그림을 보여줬다. 흑백 판화 스타일과 입체파 특색이 드러나는 그림 등 피카소의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모사한 것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에 중독’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이 중 한 장의 그림을 고르면 AI는 스스로 그림을 고도화 시켰다. 기자가 우측 상단의 그림(버전2) 선택 버튼을 누르자 1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고 AI는 최종적으로 그림을 정교화 시킨 것이다. 이 모든 시간은 약 3분이 걸렸다.

AI가 한 장의 그림을 더 그리도록 해봤다. ‘/imagine prompt: A man is reading a newspaper while drinking coffee on a rainy day, in the style of Edward Hoppe’. 비가 오는 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남자를 에드워드 호퍼(미국의 화가)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AI는 피카소 스타일 그림을 요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몇 번의 고도화 작업을 거치더니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여줬다.

미드저니는 컴퓨터 코딩을 배우거나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이, 디스코드라는 미국의 채팅앱과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접속 가능하다. 어려운 문장이 아니라 간단한 영어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AI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해 그림을 그려준다. 미드저니는 아직 시제품 수준으로,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테스트 중인 AI다. 미국에는 이런 유명 AI 화가 프로그램이 10여개가 있다.

AI화가 프로그램 미드저니에서 기자가 직접 그림을 그려보도록 명령하자 출력된 이미지 파일 /임경업 기자

미드저니라는 프로그램을 쓴 이유는 최근 미국서 열린 대회에서 이 AI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 인간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제치고 우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콜로라도 주립미술박람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게임 개발자 제이슨 앨런은 미드저니를 이용해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그림을 그려 우승했다. 제이슨 앨런은 AI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작품을 출품해, 수백만원 수준의 상금도 탔다. 권위가 높은 상도, 상금의 액수도 크지 않았지만 AI가 사람을 속이고 감쪽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미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제이슨 앨런이 AI화가 미드저니를 이요해 그려 우승한 그림 '스페이스 오페라'.

음악에서도 AI활용은 보편화되고 있다. AI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원을 만드는 국내 스타트업 포자랩스에 의뢰해 직접 AI 작곡가를 사용해봤다. “SF 장르 영화 오프닝에 나올 것 같은 음악, 오케스트라로 가슴 뛰게 만들어주면서도 비장함이 느껴지도록”이라고 짦은 문장을 메일로 보냈다. 약 4분만에 완성된 음원이 왔다. 유명 작곡가가 만든 것처럼 섬세하지는 않지만, 견습 작곡가가 썼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 수준은 됐다. 포자랩스 관계자는 “이미 짜여진 프로그램에서 몇 개의 장르와 상황, 곡의 빠르기 등 설정을 건드리면 AI가 학습을 거치면서 음악을 만든다”며 “과거 사람이 작곡한 수많은 곡을 마디마디 해체와 분해를 하면서 AI가 작곡의 원리를 학습하고 이를 다시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포자랩스 AI 작곡가에게 의뢰한 음악 들어보기>

실제 이런 AI 작곡은 유튜브 배경음악 등 콘텐츠 제작에 쓰이거나 방송사 프로그램 오디션 경연곡으로도 쓰이는 등 널리 쓰이고 있다. 사람이 만든 음악은 저작권료 이슈에 민감하지만, AI는 저작권 문제에서 현재까진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AI 작곡가의 음악은 저작권 사용료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곡 자체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금액이 한 곡에 수십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유명 작곡가의 1곡 당 구매 비용이 수천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유명 체스 선수가 이미 인간의 능력 한계를 넘어선 체스 AI 프로그램을 대회에서 몰래 활용하는 방식의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체스계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이미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도 AI 기보를 사람이 분석하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AI가 인간의 영역을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을 것인지, 논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