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약 3000에서 출발했던 코스피 지수는 지난 6월 미국의 자이언트 금리 인상(0.75% 인상) 이후 하락 폭이 가팔라지며 지금까지 약 25% 하락했다. 그러나 이런 약세장에서도 홀로 상승세를 보이며 독주하는 종목들이 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장비 관련 기업들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현재 94조원에서 2025년 200조원으로 성장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규모(연간 약 200조원)만큼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양극재’와 ‘음극재’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해온 국내 업체들의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미국이 중국 광물을 배제하는 인플레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대거 수주 낭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주는 ‘포스코케미칼’… 올해 38% 상승

국내 최대 배터리업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7월 주가가 35만원대로 바닥을 찍은 뒤 상승세를 이어가며 상장 초기 달성했던 최고점(54만8000원)을 향해 가고 있다. 삼성SDI도 최근 들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본격 확장하면서 연저점(48만1000원) 대비 36% 상승한 65만5000원까지 올라왔다. 올해 역대 최고 수준의 조 단위 영업이익 실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배터리 주요 소재 업체의 상승률은 이를 넘어선다. 소재 업종 대장주는 포스코케미칼(포켐)로 올해 주가가 38% 오르고, 연저점(9만6600원) 대비 2배로 올랐다. 포켐은 지난 5월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GM과 8000억원을 투자해 캐나다에 양극재 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데 이어, 최근 포드가 수십조 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터리 양극재와 음극재를 동시 생산하는 업체이면서, 포스코가 소유한 광산을 통해 리튬·니켈 같은 원료를 수급하기 때문에 중국 공급망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이 때문에 미국 IRA 최대 수혜주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94% 수입하고 있는 양극재 핵심 재료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화합물) 기술을 가진 국내 업체 ‘코스모신소재’도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코스모신소재는 울산에 160억원을 투자해 2400t 규모의 전구체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어, 조만간 양산 능력을 갖추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주문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LG화학도 양극재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북미 공장까지 추진하면서 ‘배터리 소재주’로 분류돼 최근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밖에 라면과 과자류 포장지를 만들다가 최근 LG와 1조원대 배터리 파우치 공급 계약을 체결한 율촌화학, 헝가리 배터리 분리막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한 더블유스코프의 주가가 큰폭 상승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에너지부 관계자들이 방한했을 때, 배터리 분리막과 동박(음극 핵심 소재) 업계도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업체들의 미국 진출 가능성이 점쳐지며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남몰래 독주하는 K 배터리 장비업체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 배터리업체들에 제조 장비를 공급해온 한국업체들도 후광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미국 시장 확대에 따라, 장비 발주가 덩달아 크게 늘고 있다.

중견 장비 업체인 에이프로는 지난 2개월간 주가가 24% 올랐다. 에이프로는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에 활성화 공정 장비를 중국 경쟁 업체와 비슷한 규모로 공급해왔다. 그런데 최근 미·중 갈등 심화와 IRA법 여파로 LG의 미국 오하이오주 GM 합작 공장에는 에이프로가 장비를 전량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저 노칭 장비를 공급해온 디이엔티도 27% 올랐다. LG의 미국 공장에 공급하기 위한 500억원대 물량을 따내 내년 매출은 전년의 2배(1139억원), 영업이익은 9배(213억원)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장비 업체들의 수주 잔액은 2020년 말 1조3247억원에서 올해 2분기 약 4조원으로 3배로 늘어났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생산 능력이 2020년 연간 150GWh(기가와트시)에서 올해 말 기준 350GWh까지 두 배 넘게 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