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가 기존 전기차 개발 계획을 완전히 ‘리부팅(Rebooting·다시 켬)’한다. 현재 개발 중인 전기차 신차 프로젝트를 대부분 중단하고 올해 도입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e-TNGA)의 폐기까지 검토한다. 올해 5월 출시한 전기차 bZ4X가 품질 불량으로 환불까지 하는 대굴욕을 겪자 전기차 사업의 전면 쇄신에 나선 것이다.

25일(현지 시각) 로이터는 “도요타가 내부적으로 ‘전기차 생산 효율 경쟁에서 이미 테슬라에 패배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BR(비즈니스 리폼·Business Reform)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전기차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되짚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계기는 bZ4X 쇼크였다. bZ4X는 e-TNGA 기반 첫 전기차이자, 지난해 아키오 도요다 사장이 “2030년까지 전기차 30종을 내놓겠다”는 전기차 대전략을 선포한 뒤 내놓은 첫 번째 전기차 모델이었다. 하지만 출시 두 달 만에 주행 중 바퀴가 빠지는 치명적 결함이 발생했고, 원인을 못 밝힌 도요타는 결국 모든 차량을 환불해야 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절대 강자인 도요타가 전기차를 쉽게 생각했다가 낭패를 겪은 것이다. 하지만 도요타의 각성은 도요타가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2월 전기차 전략을 발표하는 일본 도요타의 아키오 도요다 사장이 앞으로 공개할 전기차 실물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는 최근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하고, 전기차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플랫폼 조기 폐기, 테슬라식 공법 도입도 고려

로이터에 따르면, 도요타는 올해 도입한 전기차 플랫폼 e-TNGA를 조기에 폐기하고,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플랫폼은 자동차 개발·생산의 뼈대가 되는 설계로, 현대차의 경우는 E-GMP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아이오닉5·EV6 같은 주력 전기차를 만든다. e-TNGA를 폐기하면 이를 기반으로 개발 중인 10여 종의 전기차를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요타는 새 플랫폼 개발에 빠르면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신차 출시 지연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도요타는 당초 e-TNGA를 만들 당시 전기차 시장의 급팽창을 예상하지 못하고 전기차 생산라인에서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도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품질 불량이 발생하고 생산 비용이 줄어들지 않자, 아예 100% 전기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자사의 기존 공정에서 완전히 탈피해 미국 테슬라의 기가프레스 공정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테슬라가 가장 먼저 도입한 기가프레스는 거대하고 정밀한 틀을 이용해 차체 핵심부를 한 번에 찍어내는 방식이다. 도요타는 내부적으로 ‘테슬라 벤치마킹’을 내걸고 덴소·아이신 같은 부품 계열사에도 “테슬라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효율화와 열관리 기술을 최우선으로 개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 내연기관차의 부품과 설계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은 ‘BR그룹’이 주도하고 있다. 아키오 사장 직속으로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추진할 때 만드는 비상설 조직이다. 도요타는 고문격으로 물러났던 시게키 데라시 전 임원(CCO)을 다시 불러 그룹장을 맡겼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도요타 차량의 핵심 설계를 이끌었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제 전기차 경쟁 본격 시작

도요타 내에서는 ‘전기차 수요를 과소평가했다’는 반성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요타 핵심 인원들은 “전기차 보급이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고, 테슬라 등 경쟁사들이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도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자성은 최근 도요타의 행보에도 반영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달 초 7조원을 들여 일본과 미국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를 직접 공급하겠다는 도요타의 의지도 반영됐다. 동시에 도요타는 올해 말 중국 시장에 전기차 bZ3를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업체 BYD와 협업했고 BYD 배터리를 탑재했다. 전기차 최대 시장 중국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교수는 “시장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사업을 전개하는 도요타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며 “도요타의 본격 참전으로 전기차 시장의 진짜 경쟁은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