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1~9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 10종 가운데 7종(쏘렌토·그랜저·카니발·팰리세이드·쏘나타·G80·K8)은 중형급 이상이었다. 차량 전체로 봐도 지난해 국내서 팔린 국산차 10대 중 4대(42%)는 그랜저급 이상 준대형·대형차인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이 비율은 10대 중 2대꼴(24%)이었지만, 6년 사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 한강대교에서 바라본 올림픽 대로 모습. 대부분 차량들이 SUV(스포츠 유틸리티), 미니밴, 준대형세단 등 큰 차들이다. /2022.11.13 이덕훈 기자

반면 유럽에선 판매 톱10 모델이 모두 경형·소형으로, 중형급 이상은 단 한 종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선 판매 톱 10종 9종이 경형·소형이고, 단 1종만 중형급이다. 일본에선 올해 팔린 승용차 39%(135만대)가 경차였다. 10대 중 4대는 경차인 셈이다.

◇'주변 시선’ 때문에… 주말 여행하려고 ‘큰 차’ 선택

국내에서 승용차보다 SUV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에너지 효율화 측면에선 거꾸로 가는 흐름이다. 올해 팔린 10대 중 7대(69%)는 SUV로, 2015년 39%에서 급증했다. 팰리세이드·트래버스·타호·익스페디션처럼 배기량 3500cc가 넘는 대형 SUV 판매도 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미국에서 인기인 대형 픽업트럭을 찾는 수요가 늘자 경쟁적으로 국내에 들여오고 있고, 과거 영업용으로 쓰이던 다목적차량 ‘기아 카니발’은 최근 가성비 좋은 ‘패밀리카’로 떠오르며 국내 판매 순위가 4위로 급등했다. 그만큼 대형차 선호 현상이 강한 것이다.

한국에서 ‘큰 차’를 타는 이유는 다양하다. 승차감, 넉넉한 공간, 주변의 시선 외에 코로나 이후 차박이 인기를 끄는 것도 한 요인이다. 세 아들과 차박을 즐기는 이모(47)씨는 대형 SUV 트래버스를 타고 전국 명소로 여행을 떠난다. 이씨는 밤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2~3시간씩, 총 5시간 정도 공회전한다. 이씨는 “차박을 가보면 절반 이상이 내연기관차에 SUV”라며 “공회전이 환경과 에너지 측면에서 안 좋다는 건 알지만, 밤에는 난방을 위해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 국민 5일에 한 번 택배… 디젤 소비도 덩달아 늘어

과도한 택배,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에너지 낭비를 부추긴다. 대표적으로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의 경우 ‘로켓 와우’ 멤버십에 가입하면 무제한으로 당일 무료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서비스 회원이 현재 900만명이며 무료 배송받을 수 있는 품목은 6100개에 달한다. 쿠팡뿐이 아니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로켓배송, 새벽배송 같은 이름으로 배송 경쟁을 벌이면서 ‘무료 배송 서비스’를 남발했다. 작년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70.3회로, 지난 2010년 연간 25회였던 것에 비해 3배 가까이 폭증했다. 일본(39.9개)과는 비교할 수 없고 택배 왕국이라고 불리는 중국(75.7개) 수준이다.

차박 캠핑이 인기를 끌며 SUV, 미니밴 등 큰 차 수요가 늘고 있다.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공

‘배달의 민족’ ‘요기요’ 같은 음식 배달앱 이용도 코로나를 거치며 급증했다. 지난 9월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약 2조원으로 2019년 같은 달(8500억원)의 2.3배로 폭증했다. 작년 12월 1인당 월간 배달앱 이용 건수는 5.4건으로 2020년 1월(4.1건) 대비 30% 늘었다. 일주일에 1회 이상 음식 배달을 시킨다는 것이다.

택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택배 차량의 원료인 디젤 소비량은 1975만TOE(석유환산톤수)로 10년 전(2011년) 대비 31% 늘었다. 수송 분야의 디젤 사용 비율도 같은 기간 41%에서 49%로 크게 늘었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디젤차를 단종시키고 있지만 화물차(트럭)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트럭들 대부분이 노후화돼 갈수록 연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택배 차량이 주로 속한 일반 화물차량의 절반(49%)은 연식 10년 이상 된 노후 차량이다. 평균 연비는 L당 4.7㎞로 최악 수준이다. 특히 택배 근로자들은 짧은 거리를 제동과 가속을 번갈아 가며 운행하는데, 이는 최악의 연비를 만드는 조건이다. 하루빨리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기차로 전환해야 하지만, 현재 택배 전용 번호를 장착한 화물차 4만8000대 중 전기차는 172대로, 비율로는 0.4%(작년 말, 국회입법 조사처)에 그칠 만큼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