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는 마치 이 폴더폰과 이 스마트폰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네옴을 통해 구현하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10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네옴시티 프로젝트’ 출범을 알리는 자리에서 구형 폴더폰과 신형 스마트폰을 차례로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빈 살만은 이후에도 여러 공개된 자리에서 “도로와 자동차가 없어 오염이 없고 5분 내에 학교·직장·병원·마트에 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17일 한국을 다녀간 뒤 의구심이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로 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과 40조원 규모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외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수주가 잇따르면서 네옴시티의 모습도 서서히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엔 사우디 드론 업체를 통해 네옴의 핵심 도시인 ‘더 라인’의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 기업들이 실무 총괄… 한국도 중추 역할
빈 살만의 의지가 투영된 도시가 네옴의 핵심 주거단지 ‘더 라인’이다. 네옴 프로젝트 실무는 주로 미국 대형 건설사(벡텔)와 인프라 컨설팅사(에이콤)가 주도하고 있는데, 기본 도시 계획은 미 건축회사 모포시스가 맡고 있다. 모포시스가 최근 공개한 더 라인은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 모습을 하고 있다. 길이 170㎞ 직선 형태의 거대한 벽처럼 생긴 빌딩 2개 사이에 모든 인프라를 집약한 형태다. 두 쌍둥이 빌딩의 높이는 500m로 102층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381m)보다 높다. 빌딩 외벽에는 거대한 거울이 달려 주변 사막을 비추면서 도시가 자연 속에 숨어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네옴 측은 “서울 면적의 6% 공간에 서울과 같은 90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으며, 95%의 자연환경을 보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라인의 도시의 끝과 끝은 지하 고속철을 통해 20분 만에 이동이 가능하다. 170㎞에 달하는 이 터널 공사는 현재까지 26㎞ 구간이 발주됐다. 이 중 12㎞ 구간을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수주했고, 나머지는 스페인 컨소시엄이 수주했다. 또 이 터널을 다니는 고속철은 지난 17일 사우디 투자부와 MOU(양해각서)를 맺은 현대로템이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은 네옴 임직원을 위한 ‘베타 커뮤니티’ 주택 1만가구를 모듈러 방식으로 짓기로 MOU를 맺었으며, 이 계약이 성사되면 삼성물산과 협업 중인 모듈러 공법 전문 기업 포스코A&C도 삼성물산 납품 형태로 사우디에 진출할 전망이다.
◇추가 발주 무궁무진…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도
네옴 시티는 더라인 외에도 초대형 부유식 산업단지 ‘옥사곤’과 중동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산악관광단지 ‘트로제나’까지 규모가 어마어마해 항만·공장·에너지·관광시설 건설부터 스마트시티에 필요한 통신·로봇·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주전에 참여할 수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올 12월이나 내년에는 우리 기업들이 사우디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옴시티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사우디 정부 자금과 사우디 국부펀드 PIF, 그리고 각국의 수출입은행들이 중심이 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알려진 투자 금액 5000억달러(약 677조원)는 ‘더 라인’의 빌딩을 짓는 데 드는 비용으로, 네옴시티 전체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총 1조달러(약 13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워낙 초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더 라인이라는 도시가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하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다수의 기업이 여전히 이게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입찰에 참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도 “큰 덩어리를 이어 맞추는 모듈러 방식으로 건물을 세워나간다고 하는데, 아직 초고층 건물은 모듈러 방식으로 만든 전례가 없다”고 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은 30~40년 이상 무리 없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며 “그가 원유 중심의 사우디 경제를 홍해 중심의 첨단 경제로 바꿔 새로운 100년을 열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