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간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에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이 이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늪’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판매 감소, 외국계 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보복, 전기차 시대 자국 기업들의 부상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업체들의 중국 내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다. 2016년 사드 보복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큰 어려움을 겪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중국 판매 1위인 독일 폴크스바겐, 3위 미국 GM, 전기차로 승승장구하던 테슬라까지 모두 성장세가 꺾이면서 ‘중국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각) “중국에서 글로벌 완성차의 황금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1위 폴크스바겐 흔들… GM은 이익 급감
폴크스바겐은 코로나 이전까지 매출의 50%가 중국에서 나왔다. 하지만 최근 점유율이 급감하고 있다. 올해 1~10월 판매량은 261만대, 점유율은 15.5%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19.5%) 대비 5분의 1이 줄었다. 2017~2019년 한 해 400만대를 넘게 팔던 폴크스바겐은 중국 업체들이 첨단 전기차를 내놓는 사이, 소프트웨어 오류 문제로 전기차 출시가 지연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뒤늦게 전기차 ID.4를 출시했지만, 중국 자동차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9년 점유율 12.9%였던 GM은 올해 8.7%로 떨어졌다. 순위는 2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다. 게다가 판매량 대부분은 상하이·우링자동차와 합작해 만든 500만원대 전기 경차로 수익성은 크게 떨어진다. 이 합작사 지분 44%를 보유한 GM이 중국에서 지난 4분기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6억달러(약 7900억원)로, 북미 시장에서 벌어들인 115억달러의 5% 수준이다.
매출 절반이 중국에서 나오는 테슬라 역시 기세가 꺾이고 있다. 중국 토종 기업 BYD의 급성장과 급발진 의심 사고 등이 겹치며 재고가 2만대 가까이 쌓이자 최근 가격을 최대 9% 인하했다. 또 2017년 43%이던 스텔란티스 공장 가동률은 올해 17%로 떨어졌고, 포드도 71%에서 25%로 떨어졌다. 스텔란티스는 결국 중국 철수를 발표했다. BMW와 벤츠는 중국에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가 본격적으로 고급차 시장에 진출하면 이 시장 역시 잠식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중국 현지 업체들은 부상... 해외도 진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위기는 BYD·지리·창안·니오·샤오펑 같은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2019년 22만대를 팔던 BYD는 올해만 10월까지 136만대를 팔아, 중국 판매 4위로 뛰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수록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은 내년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없애기로 했다. 보조금 없이도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실제로 BYD는 외국계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하를 단행한 것과 달리, 가격을 100만원 이상 올렸다.
중국 업체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일본 시장 진출을 선언한 BYD는 내년 한국 시장도 진출한다. BYD는 최근 수출을 위한 자동차 운반선 8척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1척당 7700여 대의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선박으로, 총 구매 비용은 1조원이다. 중국 매체들은 상하이차, 체리차, 니오도 선박 주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