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진행된 ‘수명(lifespan)이 긴 자동차’ 조사에서 도요타가 상위 10개 차종 중 6개를 휩쓸었다. SUV·미니밴·세단·전기차 등 부문별 수명 조사에서도 전기차를 제외하고 1위는 모두 도요타였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관심은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같은 첨단 기술에 쏠려 있지만, 자동차의 가장 기본인 내구성에선 도요타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다. 도요타가 미국에서 GM과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전 세계 1000만대 판매를 유지하며 1위를 지켜온 비결이 기본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도요타 48만㎞ 타도 잘 나간다
미국 중고차 분석기관인 아이시카즈(iSeeCars)는 올해 1~10월, 미국 도로를 달린 자동차 200만대 중 누적 주행거리가 긴 상위 1% 차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수명이 가장 긴 모델 1·2위는 도요타의 대형 SUV인 세콰이어와 랜드크루저였다. 수명은 각각 48만㎞, 45만㎞에 달했다. 툰드라(4위), 프리우스(6위), 하이랜더 하이브리드(10위)까지 상위 10개 중 6개가 도요타 모델이었다. 쉐보레 서버번(3위), GMC 유콘XL(5위), 쉐보레 타호(7위) 같은 GM의 대형 SUV 3종도 10위권에 들었다. 혼다 릿지라인은 8위로 10위권 중 7개가 일본 차다. 10위권 차종은 대부분 중·대형 SUV와 픽업트럭으로, 수명이 대략 40만㎞에 달했다. 20위권으로 넓혀 봐도 도요타와 일본차 선전이 두드러진다. 10~20위에는 도요타 4종, 혼다 2종, 닛산 1종이 포함됐다. 나머지 3개는 포드 2종과 GM 차량이다.
현대차·기아는 종합 20위권에는 못 들었지만, 부문별로 집계된 조사에선 이름을 올렸다. 싼타페가 SUV 부문 20위(수명 33만2165㎞), 미니밴 부문에서 기아 세도나(한국명 카니발)가 4위(수명 33만5733㎞)에 올랐고, 하이브리드 부문에선 현대차 쏘나타, 기아 옵티마(K5) 하이브리드가 1~4위를 휩쓴 도요타·렉서스에 이어 5·6위를 차지했다.
미국 같은 대륙에선 인적이 드문 시골이나 사막,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 위에서 차가 고장 날 경우 고립되면서 낭패를 볼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차량 내구성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 교수는 “모노즈쿠리(장인 정신)를 고수하는 도요타는 재료와 공정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노력을 하고,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뒤 부품을 채택해 부품사와 장기적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현대차, 구매 후 3년 만족도는 더 높아
현대차·기아의 내구성도 최근 10여 년간 크게 개선돼왔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수년간 JD파워 내구품질조사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JD파워 내구품질 조사에선 기아가 전 세계 브랜드 32개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현대차·제네시스는 3~4위를 했다. 2위는 GM 브랜드 뷰익, 5·6위는 도요타·렉서스였다. 하지만 JD파워 조사는 차량을 구매한 지 3년이 지난 고객을 대상으로 한 184개 항목의 만족도 조사로, 차를 얼마나 오래 탈 수 있는지를 보는 수명 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술 발달로 차량 평균 내구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JD파워의 예측으로는, 올해 도로를 달린 미국 자동차 평균 수명은 12.2년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2002년 평균 수명은 9.6년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약 11년이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최근 신차 부족과 재택근무 증가로 소비자들은 기존 차를 더 오래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엔 경기 침체와 자동차 할부 비용 상승으로 내구성 좋은 차의 인기가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