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리튬 가격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리튬 가격은 13일 기준 t당 53만2500위안(99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7만위안이었던 리튬 가격은 올해 2배 넘게 올라 지난달 58만1500위안까지 급등했다가 한 달 사이 10%가량 내린 것이다.
원자재 업계 전문가들은 내년엔 글로벌 경기 하강과 공급량 증가 등을 이유로 리튬 가격 하락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전체 리튬 생산의 40%가량을 사용하는 배터리 업체들은 비용 감소가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전기차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이 2025년으로 생산 스케줄을 맞춰 공장 증설 경쟁에 들어가면서 배터리 공급 과잉과 이에 따른 제품 가격 하락이라는 위험을 동시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 경기 죽으니 리튬 값 잡혔다
원자재 시장조사 업체들은 앞으로 상당히 가파르게 리튬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조사 업체 코리아PDS는 내년 리튬 가격이 t당 35만250위안, 2025년 19만5201위안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하반기 리튬 가격이 톤당 47만위안, 골드만삭스는 10만위안대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판단을 내놓는 근거에는 부동산 경기 하락이 자리해 있다. 건설 경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리튬의 주요 수요처 중 하나인 건설 타일, 세라믹 등 제조에 투입되는 리튬 비중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세라믹은 올해 리튬 전체 생산량 중 3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수요처였다. 손양림 코리아PDS 수석연구원은 “중국 등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내년엔 세라믹에 공급됐던 리튬의 25%가 배터리 쪽으로 흐를 것”이라고 했다. 이 양은 3만t에 달한다.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리튬양은 30~60㎏이다.
여기에 지금까진 염수와 호주의 스포듀민이란 광물에서 주로 리튬을 생산하던 방식이 리튬 함유 점토와 지열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서 생산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내년 글로벌 리튬 수요는 올해보다 26.1% 증가한 105만9000t이지만, 공급은 53% 늘어난 96만1000t에 달해 공급 부족이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2025년에 맞춰진 배터리 생산시계
그러나 배터리 업체에는 리튬 가격 하락이라는 호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증설 경쟁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전기차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배터리 업체들은 2025년으로 양산 스케줄을 맞춰 대규모 공장 증설에 나선 상황이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과 BYD, EVE에너지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올해만 75건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판데일리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올해 500GWh(기가와트시) 규모인 중국 배터리 업체의 생산 능력은 2025년 3000GWh로 6배 증가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업체들도 GM, 포드와 합작사를 통해 미국에서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생산 능력을 올해보다 2배 이상 높인 540GWh, SK온은 220GWh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일본 파나소닉도 미국 캔사스 공장에서 2025년부터 원통형 전지 양산에 들어간다.
반면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 수요는 설비 증설을 통한 공급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만의 디지타임스리서치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설치량은 올해보다 53% 증가한 735GWh, 2025년에는 1689GWh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배터리 업체들의 공급량인 4000GWh가량보다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배터리 공급 과잉은 제품 가격을 가파르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현재 배터리 업체가 주도해온 전기차 시장 주도권이 완성차 업체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IRA 정책 등으로 생산 기지를 담당했던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배터리 생산 공장이 많이 건설되면서, 소수의 강자만 살아남게 되는 과잉 시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