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지난 6일 중국을 비롯한 한국·일본·호주에서 최대 13.5% 가격 인하를 단행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반도체 수급난이 본격화한 지난 2년간 수차례 가격을 올려온 것과 정반대 조치다. 지난 1년간 주가가 70% 폭락하고, 판매 부진을 겪어온 테슬라가 새해 반격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완성차 업계에선 테슬라의 조치가 다른 전기차 가격 인하를 촉발시켜 전기차 업계의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치킨 게임은 대립하는 양자가 서로 양보하지 않아 서로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일컫는다. 산업계에선 경쟁 업체가 파산할 때까지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경우를 뜻한다.
테슬라 반격 카드의 첫 무대는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된 중국이다. 재무제표가 건실한 테슬라가 차량 가격을 낮춰 비용 상승에 직면한 중국 전기차 업체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전략이 최근 테슬라의 글로벌 판매 총괄을 맡으며 테슬라 내 ‘넘버2′ 자리에 오른 톰 주 중국법인 대표 인사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업계에선 테슬라가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대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테슬라발 전기차 ‘치킨게임’ 시작
이번 가격 인하의 주요 무대는 테슬라의 핵심 생산기지이자 소비 시장인 중국이다. 가격 인하 조치로 모델Y 등 중국에서 테슬라 주요 제품 가격은 미국보다 40% 이상 싸졌다. 테슬라 모델3의 경우 22만9900위안(약 4216만원)까지 낮아져 중국 전기차 업체인 BYD의 대표 세단 ‘한’과 가격이 같아졌다.
테슬라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는 높은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덕에 가능하다.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3분기 기준 17.2%에 달한다. 중국 1위인 BYD(6.4%)나 5% 아래인 다른 중국 업체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테슬라로선 가격을 낮춰 수익을 덜 내더라도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이 가능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가격을 내릴 만한 재무적 여력이 없는 상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시작된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BYD는 차량 가격을 내리는 대신 최근 ‘양왕’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로 내놨는데 한 대당 이익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판매뿐 아니라 재고 관리, 선적 비용 문제 등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테슬라의 주요 소비 시장이면서 핵심 생산 기지다. 지난해 상하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인도(판매)된 테슬라 차량은 71만865대로 전체의 54.6%를 차지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물량은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나 유럽으로 수출된다. 수출에는 차량 선적 등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중국 판매량이 늘어나는 게 실적 부진에 직면한 테슬라로선 유리한 상황이다.
◇톰 주 전면에 내세운 테슬라
외신들은 이번 가격 인하 정책이 톰 주 중국 법인 대표가 북미·유럽 등 글로벌 판매 사업부를 총괄하는 지위로 승진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실상 이 결정을 일론 머스크에 이은 ‘넘버2′ 톰 주가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라이징 스타’로 불리는 톰 주는 중국계 뉴질랜드인이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치고 2014년 테슬라에 합류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가동을 중단했던 상하이 공장 정상화에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6월 공장이 코로나 봉쇄로 멈추자, 두 달 가까이 현장에서 숙식하며 빠르게 공장 정상화를 이뤄냈다. 지난해 말 그가 이끄는 상하이팀은 전기 픽업트럭 출시에 애를 먹는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 급파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일론 머스크에 이은 차기 CEO로 톰 주를 거론하고 있다.
톰 주의 부상은 중국 내 마케팅 측면에서도 테슬라에 이득이란 분석이다. 한 완성차 업체 임원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이 있고 중국인이 의사 결정을 주도하는 테슬라에 대한 중국인들의 우호적 감정이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