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10시 25분쯤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를 달리던 테슬라 모델Y 전기차에서 불이 나 차량이 전소했다. 반대편 차량과 충돌하면서 시작된 불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세지며 차량 전체를 뒤덮었다. 소방 인력 50여 명, 소방차 등 장비 17대가 동원됐지만 불을 끄는 데 1시간 18분이 걸렸다. 앞서 지난 7일엔 수리를 위해 서비스센터 앞에 세워둔 테슬라 모델X에서 화재가 났다. 이때도 소방 인력 65명, 차량 27대가 투입됐고 2시간 48분 만에 불길이 잡혔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운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 포비아’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차량 충돌 사고뿐 아니라 충전이나 주차를 해놓은 상황에서도 화재가 발생하자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심리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전기차에는 대부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탑재돼 있는데, 중국 업체들이 주로 쓰는 LFP(리튬·철·인산) 배터리보다 열용량이 크고 인화점(불이 붙는 온도)이 낮아 화재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연이은 화재에 ‘전기차 포비아’
전기차 화재는 진화가 쉽지 않다. 다른 곳으로 옮겨붙지 않는다 해도 진압에 통상 2~3시간 많게는 8시간까지 걸린다. 지난해 12월 5일 경북 영주시에서는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가 건물 외벽과 충돌한 후 곧바로 불이 나 운전자가 사망했다. 작년 6월에도 부산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던 아이오닉5가 충격 흡수대에 충돌한 뒤 불이 나 2명이 숨졌다. 두 사고 모두 불길을 잡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이 때문에 아예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 건물은 최근 전기차 출입을 금지했다. 건물에 병원·영화관 등이 있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전기차 커뮤니티에선 “전기차 오너라고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이 나오고, 주차 금지 건물의 주소가 공유되고 있다.
구매 시장에선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재고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던 김모씨는 “다둥이 아빠라 안전이 중요한데 화재 사고가 충격적이라 출고를 포기했다”고 했다.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이 감소하고 충전 시설이 부족해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 지난해 하이브리드 차량이 21만1304대 팔려 전년보다 14.3% 늘어난 것도 이런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완성차 업계에선 전기차 확산 속도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컨설팅 업체 KPMG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 CEO·임원 915명을 인터뷰한 후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전체 시장의 10~40%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화재 진화할 방법을 모른다
전기차에는 배터리 수천 개가 셀을 이뤄 탑재된다. 셀 안에 불이 붙으면 열이 급속도로 오르는 열 폭주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국내 전기차에 주로 탑재된 NCM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이 커 그만큼 화재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전기차 화재를 진압할 뾰족한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전체를 이동용 수조에 담그거나 차체를 질식 소화포로 덮는 방법이 유용하다고 보고돼 있지만, 효율성에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동식 수조의 경우 커다란 튜브 수조로 차를 둘러싸 물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는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해 개발된 방식이 아닌 데다 주변 지형 영향도 많이 받는다는 한계가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좁은 주택가에서 사용이 어렵고, 평평한 지형이 아니면 물이 새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이동식 수조가 전국 15개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완성차, 배터리 업계에선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액체이던 전해질(전기를 통하게 하는 물질)을 불연성 고체로 만들어 화재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쯤부터 상용화 단계에 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평시엔 화재 가능성이 작지만 충돌 등으로 배터리 안쪽까지 충격이 가해지면 불이 더 크게 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도 안쪽 리튬 금속이 손상되면 불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미래 기술을 무작정 안전 기술로 호도해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