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메르세데스 벤츠의 콘셉트카 ‘비전 EQXX’가 도심을 달렸다. 이 차는 단 한 번 충전으로 무려 1200km를 달릴 수 있다. 지난해 CES에서 온라인으로만 공개됐던 이 차는 올해 실물이 공개됐다. 본지 기자는 국내 언론사 중 유일하게 시승 기회를 잡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인근 도로를 30분간 달릴 수 있었다. 벤츠 지침에 따라 운전은 벤츠 엔지니어가 맡고 기자는 조수석에서 현존하는 전기차 중 가장 긴 주행 거리를 달성한 EQXX의 성능을 체험했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라스베이거스에 등장한 ‘비전 EQXX’는 각종 공기 역학 설계가 적용됐는데, 보닛에는 공기가 잘 흐를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왼쪽). 실내 디스플레이에는 에너지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표시되며(오른쪽 위), 차량 뒤에는 아래 공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돕는 장치가 달렸다.(오른쪽 아래) /라스베이거스=류정 기자

EQXX의 외관은 균형이 완벽하게 잡힌 미래 스포츠카의 모습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벤츠 엔지니어 보리스 옐리넥씨는 페달을 밟으면서 “EQXX는 벤츠 역사상 최고이자, 전 세계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차”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본사가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영국 실버스톤까지 한 번의 충전으로 1202km 주행에 성공했다”고 했다. 옐리넥씨는 “첨단 배터리와 E드라이브 기술, 공기역학 디자인과 태양광 패널이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운전석 대형 디스플레이를 봤더니 현재 공기저항계수가 0.17Cd(Coefficient of Drag)라고 표시돼 있었다. 전 세계 어떤 양산차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현대차가 양산차 중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고 한 아이오닉6의 공기저항계수는 0.21Cd다. 또 EQXX는 차량 지붕에 초박형 태양광 전지를 117개 장착해 주행 거리를 25km 늘려준다. 내부 소재는 미래차답게 버섯으로 만든 가죽 시트, 재활용 소재를 섞어 만든 고급 실버 플라스틱이 적용됐다. 일반 도심 주행이라 최고 시속 60km 정도로 달렸지만, 차내는 정숙했고 승차감은 경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EQXX의 핵심 경쟁력은 초장거리 주행을 가능케 하는 배터리였다. 이날 운전을 했던 엔지니어와 전날 기자 간담회를 가진 마르쿠스 셰퍼 벤츠 CTO(최고기술책임자)의 말을 종합하면, 놀랍게도 이 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벤츠가 중국 CATL과 협업해 제작한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였다. 삼원계 배터리는 한국이 더 잘 만든다고 알려졌지만, 중국 업체들은 이미 이같은 고정관념을 깨는 수준에 온 것이다.

특히 EQXX의 배터리는 음극재에 흑연 외에 실리콘을 넣어 에너지 밀도를 높였다고 한다. 배터리 용량은 100kWh로 벤츠 양산차 EQS에 탑재되는 것과 같지만, 배터리 셀을 모듈화하는 과정을 없애고 곧바로 ‘팩’으로 포장하는 ‘셀투팩’ 기술을 통해 부피는 50%, 무게는 30% 줄였다. EQS의 주행 거리가 478km인 것에 비하면 2.5배 더 가는 것이다. 마르쿠스 셰퍼 CTO는 “배터리 설계는 벤츠가 했다”며 “가볍고 콤팩트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시승한 EQXX는 콘셉트카라 양산 계획이 없지만, 이 차를 통해 실증한 배터리 기술들은 내년부터 벤츠 전기차에 적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