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인 일본이 지난해 인도에 뒤지면서 4위로 밀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시장조사 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신차는 420만대로 인도(444만대)에 추월당했다. 1990년 777만대가 팔린 일본 내수 시장은 2006년 중국에 따라잡혔고, 이후 16년 만에 인도에도 밀린 것이다.

일본 도요타 공장 조립 라인./조선DB

일본 자동차 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예전 모습이 아니다. 일본의 대표 기업 도요타는 지난해 GM에 미국 시장 1위 자리를 뺏겼고, 혼다와 닛산은 2021년보다 판매량이 20~40% 감소했다.

완성차 업계에선 이런 현상이 10년 이상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주도해온 일본 차의 위상 격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느려 소비층을 넓히지 못하는 데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일본 특유의 제조 방식인 JIT(Just in time·적기 공급 생산)가 반도체 등 부품 공급망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블룸버그는 “일본 자동차 업계가 워크맨을 만들던 소니, 반도체를 만들던 NEC의 몰락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일본 차에 대한 사랑이 식어간다

일본 차의 해외 판매량 감소는 뚜렷하다.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210만8000대를 팔았다. 2021년보다 9.6%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회계 기간(4~9월) 도요타의 순이익은 1조1710억엔(11조335억원)을 기록해 2021년보다 23% 줄었다. 지난해 계속된 엔저 효과로 환율로 큰 이득을 본 것을 감안하면 실적 부진은 상당한 수준이다. 혼다(98만3507대)와 닛산(72만9350대)은 지난해 각각 32.9%, 25% 판매가 감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까지 도요타와 렉서스는 각 1만대 넘게 판매됐지만, 지난해엔 두 업체를 합한 판매량이 1만3851대에 그쳤다. 닛산은 2020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혼다는 한 해 3000대 정도 팔리는 수준이다.

일본 자동차에 대한 이탈 현상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만한 전기차 브랜드 부재가 한 원인이다. 지난해 글로벌 차량 판매는 4% 감소했지만, 전기차 판매는 80% 급증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상위 20위에 일본 업체는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일본 업체들의 느린 의사 결정도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반도체 수급난은 이를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였다. 경쟁 업체들은 상대 업체의 계약 취소분뿐 아니라 브로커를 활용해 반도체 재고 물량 확보에 나섰지만 일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 모습을 보였다. 한 부품사 CEO는 “납품사인 일본 업체에 차량용 반도체를 구할 수 있는 연락처를 제공했지만, 윗선 보고 등을 이유로 시간이 걸려 결국 부품 확보에 실패하더라”고 했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일본의 JIT 생산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 업체들은 재고 최소화를 통한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지만, 공급망이 붕괴한 상황에선 적절한 생산 방식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 완성차 업체 임원은 “재고 확보가 되지 않으면 공급망 문제에 따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며 “비상 상황에서는 빠르고 유연한 대책이 필요한데도 일본 업체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 차 위상 저하 불가피”

한때 연간 700만대 이상 팔렸던 일본 내수 시장 위축도 일본 업체로선 부담 요소다. 일본 인구는 2015년부터 감소하고, 급여 수준이 제자리걸음을 하며 소비가 줄고 있다. 내수 시장이 쪼그라들수록 업체 간 경쟁은 치열해지고 가격 인하 등 출혈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늦은 전기차 전환은 판매 하락으로 이어져 위기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칼 브라우어 아이시카(자동차 평가 업체) 수석 애널리스트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를 연구하고 소비자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뒤늦게 bZ4X 전기 SUV를 출시했지만, 바퀴가 빠지는 결함을 보이며 시장에 실망을 줬다. 니혼게이자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차 위상 저하는 불가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