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64㎞로 달려온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가 ‘쾅’ 하는 굉음을 내며 벽에 충돌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냉각수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내부는 거의 손상이 없었다. 차량 앞쪽 차체가 충격을 흡수한 덕에 내부의 대시보드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운전석과 뒷좌석에 타고 있던 더미(인체 모형) 역시 전혀 파손되지 않았다. 유리창도 금만 갔을 뿐 완전히 깨지지 않았고, 충돌 후 바깥에서 4개의 문과 트렁크도 정상적으로 열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2일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에서 아이오닉5의 충돌 테스트를 미디어에 공개했다. 차량 내구도를 드러내는 충돌 테스트는 설계부터 차체, 조립 등 생산과 관련된 전 분야가 일정 수준에 올라야 개선되는 종합 평가에 해당한다. 이를 공개했다는 건 현대차그룹이 그만큼 품질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존하는 가장 까다로운 충돌 테스트로 꼽히는 IIHS(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 평가에서 25개 차량이 최우수 등급인 TSP+, 우수 등급인 TSP를 획득했다. 이는 안전의 대명사라 불리는 도요타를 앞지른 성적으로 글로벌 1위(연식 변경 모델 중복 집계 제외)에 해당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설계부터 첨단 장치 개발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1개 차종 테스트에 100억원
이날 테스트는 차량 전면 40%를 벽에 충돌시켜 차량 내 승객의 충돌 안전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운전석에는 일반 남성 체형의 더미가, 뒷좌석엔 여성 체형의 더미가 착석했다. 더미에는 센서가 부착돼 이후 상해 정도를 계산하는 데 활용된다.
눈 깜짝할 새 차량이 충돌하자 곧바로 5명의 연구원들이 뛰어들어 육안 점검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차체 변형 정도를 살피기 전에 문 개폐, 에어백 작동, 고전압 배터리 파손 여부 등을 직접 점검하는 것이다. 이후엔 분석 프로그램과 더미 센서 등을 활용해 차량 변형, 상해 정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돌입한다. 2005년 완공된 충돌테스트 장은 전방위 충돌이 가능한 3개의 트랙이 마련돼 있는데, 바닥이 투명한 아크릴 창으로 돼 있어 하부에서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1개 차종당 100여 회의 테스트가 진행되며, 테스트와 분석에 4000시간이 소요된다. 차종 당 100억원가량 비용이 투입된다.
이런 실험이 실제 사고의 모든 경우의 수를 구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수퍼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충돌 시뮬레이션’도 시행한다. 이를 통해 연석 등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트럭에 깔리는 상황을 가정한 다양한 ‘복합 충돌’이 매일 100회, 연간 3만회 이상 행해진다. 백창인 현대차 통합안전개발실장은 “현행법에서 보호하는 시속 64㎞ 속력에선 안전이 99% 보장 가능하다”며 “시속 100㎞ 속도에서도 안전 보장이 가능하도록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화재 막기 위한 연구도
최근 전기차 안전에 변수로 떠오른 화재 관련 테스트와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배터리 탑재 구조나 종류, 위치에 따라 화재 가능성은 다르지만 사고로 배터리의 20~40%가 변형돼도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이날도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의 경우 차량 하부에 별도의 섀시 프레임을 구성해 보호 성능을 높였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분석 시설을 구축하고, 단순 충돌 실험 외에 배터리 부분의 직접 충돌, 셀 단위 충돌과 같은 전기차 맞춤형 테스트도 진행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화재가 나기 전 미리 진단해 알리는 기능이나 화재 시 열폭주를 방지하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