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글로벌 배터리 업계의 눈과 귀는 테슬라의 미국 텍사스 본사로 쏠렸다. 테슬라가 게임 체인저로 불려온 ‘4680배터리’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4680배터리는 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다. 기존 원통형 배터리는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주로 사용됐지만, 테슬라가 전기차로 사용처를 넓히면서 배터리 크기와 용량을 2배 이상으로 키운 것이다.
이는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2020년 9월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5배 높이면서도 파우치나 각형과 비교해 낮은 비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며 처음으로 제원을 제시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배터리 업계 전문가들은 테슬라의 4680 양산을 배터리 업계 ‘대전환’ 신호로 보고 있다. 원통형 배터리는 빈 공간이 생기는 둥근 모양 탓에 한국 업체들이 주도해온 각형이나 파우치형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제품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테슬라가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기존 배터리 업계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성능이 뛰어나고 값이 싼 배터리 출현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플랫폼 전환을 서두르고 배터리 업체들도 테슬라를 따라 원통형으로 제조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체보다 더 진보한 테슬라의 ‘배터리 체인지’… 싸고 성능좋은 원통형 ‘4680′ 양산 성공… 배터리 업계 판도 흔들
테슬라의 4680배터리는 기존보다 배터리 밀도 자체가 커진 데다 팩과 모듈 단계를 생략하고 배터리 셀을 차체에 바로 장착하는 CTC(cell to chassis) 기술이 적용됐다. 둥근 모양 탓에 불용 공간이 생기는 원통형 배터리 단점을 상쇄한 것이다. 테슬라는 팩과 모듈을 생략한 데 따른 안전상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배터리 외벽을 더 두껍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원통형 배터리는 또 둥근 몸체 덕에 전극을 돌돌 마는 ‘와인딩’ 방식의 제조가 가능해 생산 속도가 파우치나 각형과 비교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비용과 시간을 감안한 제조 효율을 따질 때 원통형이 4배가량 다른 제품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테슬라는 이번 양산을 통해 배터리도 직접 생산하게 된다. 이들은 지난 23일(현지 시각) “네바다주 북부에 35억 달러(4조3000억원)를 투자해 연간 10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4680 배터리 공장 등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간 200만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지각 변동의 조짐이 감지된다. 테슬라뿐 아니라 BMW, 볼보, 리비안 등 다른 전기차 업체들의 원통형 배터리 채택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낮은 가격이 결국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향후 몇 년간은 배터리 업체의 수주량이 많아 문제가 없겠지만, 원통형이 대세로 자리 잡은 후 라인을 설치할 경우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했다.
◇너도나도 원통형 외치는 업체들
최근 들어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앞다퉈 원통형 배터리 생산을 위한 라인 구축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4조원을 들여 충북 오창산업단지에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연구개발 시설과 생산 라인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천안과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원통형 배터리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한 사립대 교수는 “삼성SDI가 LG에너지솔루션보다 기술에서 다소 앞선 것으로 평가되지만, 실제 4680배터리 양산까지는 두 회사 모두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원통형 배터리의 기존 강자인 파나소닉,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추격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27일(현지 시각) 앨런 스완 미국 파나소닉 배터리 부문 대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양산을 준비 중인 기존 미국 공장 외에 추가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미국에 지을 수 있다”고 했다. BMW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의 공급처로 중국 CATL과 이브 에너지를 지정한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은 2025년부터 원통형 배터리를 양산해 BMW에 공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