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SK온은 포드와 추진하던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사 설립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양사는 4조원을 투자해 앙카라 인근에 유럽 시장 교두보 역할을 할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을 새로운 파트너 후보로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LG엔솔은 미국에서 추진 중인 GM과의 4번째 합작 공장 설립이 지지부진하다. 현지에선 ‘4공장이 백지화됐고 GM이 삼성SDI와 물밑 접촉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K-배터리 업계에는 대규모 합작 공장을 추진하며 돈독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온 GM-LG엔솔, 포드-SK온 조합의 결별 소식이 잇따랐다. 두 파트너십이 결렬된 데는 ‘주도권을 쥐겠다’는 미 완성차 업계의 속내가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정 배터리 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더 저렴하고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 GM·LG엔솔, 포드·SK온 등 합작 계획 어긋나… 전문가 “재편성 움직임 대비를”

지난 1일(현지 시각) 메리 바라 GM CEO가 “GM이 각형이나 원통형 배터리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 GM은 그간 LG엔솔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했다. 그런데 돌연 새 전기차 플랫폼에 들어갈 배터리 모양 변경을 언급한 것이다. 업계에선 GM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 유리한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이고 이것이 LG엔솔과의 협상이 좌초한 이유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GM은 원통형 배터리 분야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SDI와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형태와 핵심 소재의 다양화는 향후 다른 완성차·배터리 업체 간 이합집산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업체 입장에선 이미 만들어 본 배터리를 생산하는 게 유리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경제성이 뛰어난 배터리를 어디서든 쉽게 공급받는 게 중요하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배터리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시기를 지나면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형태나 소재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배터리 업체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포드의 경우 LG엔솔과 중국 CATL을 새로운 파트너 후보로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포드는 특히 CATL과 미국 미시간 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만들지 않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 주도의 파트너 재편성 움직임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격적 확장도 중요하지만 투자를 재분배하고 수주 업체를 늘려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중국과 미국에 배터리 생산 시설이 대규모로 건설되고 있어 2025년엔 이후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 우려도 있다”며 “추후 완성차 업체의 협상력 강화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