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의 새 수장으로 선임된 사토 고지 신임 사장이 13일 “이제 전기차의 때가 무르익었다”면서 “‘전기차 퍼스트(first·최우선)’라는 발상으로 사업 본연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차 우선 전략을 고수해왔던 도요타가 본격 변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늦은 도요타지만, 한 해 1000만대의 차를 파는 저력을 바탕으로 그 격차를 어떻게 줄일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토 사장은 이날 임명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한 렉서스 신차를 2026년 내놓겠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e-TNGA’라는 전기차 플랫폼에 기반한 전기차를 지난해부터 출시해왔다. 하지만 이 플랫폼은 내연기관차와 같은 생산 공정을 전제로 개발돼 생산 효율과 수익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반면 처음부터 전기차에 최적화된 생산라인과 플랫폼을 구축한 미 테슬라는 지난해 도요타의 5배에 달하는 한 대당 순이익(2~4분기 평균)을 올렸다.
사토 사장은 이날 “가장 필요한 것은 제조의 개혁”이라면서 “제조·판매·서비스를 모두 전기차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또 공식 취임은 4월이지만 사토 사장은 이날 첫 인사도 단행했다. 그는 집행임원(등기이사)을 11명에서 8명으로 줄이는 동시에, 중국 BYD와의 합작 전기차 개발센터에 파견 가 있던 엔지니어 가토 다케로씨를 자동차개발센터 총괄로 임명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 부문을 강화하되, 유력 경쟁자를 비핵심 부서로 보내는 친정체제 구축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다만 2030년 총 350만대 전기차를 판다는 기존의 도요타 목표는 바꾸지 않았다. 전기차에 올인하기보다는 하이브리드차·수소차도 계속 개발하는 ‘전방위 전략’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사토 사장은 “취임 이후 더 구체적인 전기차 전략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사토 사장이 도요타 특유의 카이젠(끊임없는 개선) 정신과 즉응성을 강조하는 ‘도요타 생산 방식’을 전기차에도 접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미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최근 ‘도요타 생산 시스템의 회복 탄력성’ 보고서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도요타의 군살 없는 공급망 관리 방식 덕분에 코로나 이후 빚어진 공급망 혼란에도 도요타가 1000만대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전년 대비 5.3% 증가한 1061만대를 생산해 판매 1위를 지켰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 교수는 “도요타는 지난 13년간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는 생산 대수를 30% 줄여왔다”며 “도요타의 오랜 철학이 새로운 전기차 사업에도 적용돼 성공할지 지켜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