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완성차 업체 포드와 파트너인 한국의 배터리 공급사 SK온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포드는 이달 초 인기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전격 중단한 뒤, 최근 이례적으로 원인이 배터리 화재에 있다며 상황을 자세히 공개했다. 포드는 15일(이하 현지 시각) “지난 4일 완성차 품질 검사 중 화재가 발생했고 옆의 차로 번졌다”며 “우리가 찾아낸 대책을 배터리 생산 절차에 적용하는 데 몇 주가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 공급사인 SK온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뉘앙스다. 이에 대해 SK온 측은 “일회성 문제이며 원인 규명을 완료해 재발 방지 대책까지 마련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내부적으론 “포드가 불필요하게 일을 키우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인 17일에는 이 차의 또 다른 배터리 이슈가 뒤늦게 추가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더 악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이날 포드 대변인을 인용해 “포드는 지난달 27일에도 F150 라이트닝 100여 대에 대해 배터리 성능 저하 예방을 위한 부품 교체를 해줬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배터리 품질 이슈가 포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호소하는 듯한 모습이다.
◇포드, 중국 CATL과 손잡으며 파트너 확대
포드와 SK온의 관계에 이상 기류가 감지된 사건은 또 있다. 포드는 지난 13일 중국 CATL의 배터리 기술을 제공받아 미국 미시간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배터리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미 인플레감축법(IRA)을 우회하기위해 ‘공장 지분은 100% 포드가 소유한다’는 꼼수까지 동원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미 공화당의 차기 유력 대선후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미국의 세금이 중국의 ‘챔피언 기업’을 돕는 데 쓰일 수 없다”면서 포드를 비난했다.
이 같은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포드가 CATL과 손을 잡은 건, 포드가 SK온에 배터리 공급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한 저가형 배터리인 리튬인산철 배터리로 공급망을 다변화해 한국 배터리 업체들과 가격 경쟁을 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최근 포드와 SK가 튀르키예 합작 공장 추진을 철회한 것도, 양사의 관계가 멀어진 것이 한 이유로 거론된다. 양사는 특히 가격 협상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한 포드의 짐 팔리 CEO가 SK온 등 한국 배터리 기업을 방문해 수율(전체 생산품 중 완성품의 비율)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강하게 항의했다는 소문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에선 포드가 무리하게 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SK온이 급하게 증산을 서두르다가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SK온측은 “양사 관계에 큰 문제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3년 차 CEO 짐 팔리, 조급해졌나
2020년 10월 취임한 짐 팔리는 이듬해인 2021년 “전기차 전환에 300억달러(39조원)를 2025년까지 쏟아부어 포드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 ‘모델T’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이루겠다”고 밝히면서 전기차 전도사로 급부상했다.
전기차 투자금 확보를 위해 1만여 명에 달하는 가차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안정적인 배터리 확보를 위해 SK온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맺었다. SK온은 포드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미 조지아주에 자체 배터리 공장을 세우는 한편, 테네시·켄터키주 합작 공장(2021년), 튀르키예 합작 공장(2022년)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포드는 아직까지 전기차 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1년 포드가 공개한 ‘F150 라이트닝’은 사전계약만 20만건에 달하면서 소위 ‘대박’을 냈지만, 생산량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포드가 고객에게 인도한 F150 라이트닝은 1만5000여 대에 그쳤고, 포드는 연간 20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미 CNBC는 “올 1분기 실적이 반등하지 못하면, 포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짐 팔리 CEO가 포드 가문과 이사회로부터 엄청난 실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