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과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이 빚어낸 공급망 재편으로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인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인도를 ‘제2의 중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현지 시장을 겨냥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극심한 생산 차질을 겪은 글로벌 IT 업계도 인도를 대체 생산 기지로 삼는 한편 인도 내수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말 집계한 인구가 14억1700만명으로, 14억1200만명인 중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평균 연령 28.4세로 38.4세인 중국보다 젊고,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6.5%로 3%에 그친 중국을 크게 앞질렀다. 김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도남아시아팀장은 “1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부터가 큰 기회인 데다, 모디 총리 지지율이 70%가 넘는 안정적 정치 환경도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 인구 대국된 인도, 세계의 공장·시장으로 떠올라… 중국만 한 자동차 시장 열린다
지난해 인도 승용차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382만대 규모였다. 승용차만으로도 중국·미국·유럽과 일본에 이어 세계 5대 자동차 시장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1700만대에 달하는 이륜차와 삼륜차 시장이다. 이 시장 수요가 일반 자동차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중국(2070만대)만 한 거대 자동차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도 중국 실적 부진을 만회할 최적 시장으로 인도를 꼽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0년 현지 생산 105만대 체제를 구축한 현대차·기아는 이르면 올해 안에 생산 능력을 122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인도 시장 2위인 현대차·기아는 2028년까지 인도에 91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인도에 EV6와 아이오닉5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인도 전기차 시장 선점에도 나섰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신흥 전기차 업체들도 인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닛산과 르노는 기존 인도 공장에 7600억원을 투입해 전기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중국 BYD는 2030년까지 인도 전기차 시장의 40%를 점유하겠다는 목표 아래 올해 인도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밝혔고, ‘인도의 우버’라고 하는 현지 기업 올라는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연 14만대 규모의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IT 업계 “인도서 수요·공급 다 늘리자”
중국의 코로나 봉쇄와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첨예한 미중 갈등 속에 혼쭐이 난 IT·가전 업계는 최근 중국 생산 기지의 대안으로 인도를 택하고 있다.
인도에서 구형 모델만 생산하던 애플은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 14의 일부를 처음 현지 생산하기 생산했고, 아이패드의 중국 생산 라인도 인도로 옮기려고 검토하고 있다. 아이폰 위탁 생산 업체인 폭스콘의 중국 정저우 공장이 지난해 코로나 봉쇄와 이에 반발한 직원들의 시위 탓에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지난달 “애플은 제품의 5~7%를 이미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비율을 25%로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23의 인도 현지 판매 물량을 현지 노이다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갤럭시Z폴드·Z플립5의 인도 물량도 현지 생산을 위해 준비 중이다. 중저가형 휴대전화를 주로 생산하는 노이다 공장이 삼성전자 최신형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것은 삼성이 그만큼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 경험) 사업부장(사장)은 지난 1일 갤럭시 S23 공개 자리에서 “인도에서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샤오미(20%)에 이어 19%로 2위다.
인도의 푸네 공장에서 1도어와 2도어 상하 냉장고를 생산하던 LG전자는 300억원을 투자해 지난달 양문형 냉장고 생산 라인을 증설했다. 1도어 냉장고와 같은 저가형 가전제품을 많이 찾던 인도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라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푸네 공장 생산 라인을 늘려 냉장고 외에도 스마트TV·세탁기·모니터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