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각) 독일·체코·이탈리아·폴란드·포르투갈·루마니아·헝가리·슬로바키아 등 유럽 8국 교통부 장관들이 EU가 추진하는 자동차 배출 규제 ‘유로 7′ 변경을 추진하기 위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모여 회의를 가졌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장관들은 이날 유로 7의 시행 시기와 방식의 비현실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틴 쿠프카 체코 장관은 로이터에 “유로 7 조건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만들려는 논의였다”며 “우리가 탄소 중립에 정말 진지하다면 현실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U가 약속해온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정책이 독일·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의 거부권으로 무산 위기에 놓인 데 이어,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유로 7′까지 반발에 직면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둘러싼 유럽 내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이 분열은 자동차 강국인 독일이 주도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유로 7 시행되면 차 가격 급등… 트럭은 대책 없어”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유로 7은 2035년 내연기관차를 종식시키려는 EU가 내연기관차에 통첩하는 ‘마지막 규제’다. 승용차는 2025년 7월부터, 대형 상용차는 2027년 7월부터 적용된다.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는 신차의 각종 오염 물질(일산화탄소·탄화수소·질소산화물·미세 입자 물질)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그래픽 참조>.

이렇게 되면 자동차 업체는 내연기관차에 각종 배출 저감 장치를 추가로 달아야 하는 한편, 내구성을 크게 높여야 해 제조 비용이 올라간다. 토마스 셰퍼 폴크스바겐 CEO는 “유로 7이 도입되면 소형 내연기관차 ‘폴로’의 비용이 최대 5000파운드(약 800만원) 증가해 사업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디젤 엔진에 의존하고 있는 대형 상용차는 더 대책이 없는 상태다. 현행 ‘유로 6′ 대비 규제 허용치가 질소산화물은 kWh당 40mg에서 9mg으로 일산화탄소는 1.5g에서 0.2g로 대폭 낮아진다. 환경 단체는 박수를 치지만 업계는 이런 수준으로 오염 배출을 줄이는 저감 기술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배충식 카이스트 교수는 “전기차로 전환하더라도 엄청난 배터리 무게 때문에 타이어 분진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분진이 덜 나오는 단단한 타이어를 쓸 경우 승차감과 성능 연비가 급속히 나빠진다”고 말했다.

◇유럽 자동차 산업계 반발… 각국 정부도 현실 깨달아

자동차 업계는 그동안 유로 7이 투자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고 강력 반발해 왔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작년 말 유로 7 초안이 발표되자 “대기 중 미세 입자의 90%는 자동차·운송과 관련 없는 석탄발전 같은 곳에서 나오지만 자동차 업계는 그동안 배출 저감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투자를 해왔다”며 “유로 7은 기존보다 질소산화물을 승용차는 4%, 밴과 대형 트럭은 2% 줄이는 데 기여할 뿐이며, 완성차 업체들이 들여야 할 막대한 투자를 감안했을 때 사실상 무용지물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까지 ACEA 회장을 지낸 BMW의 CEO 올리버 집세도 “환경적 이점은 제한적이지만 자동차 생산비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셰퍼 폴크스바겐 CEO는 작년 말 “2025년 안에 모든 승용차에 대한 유로 7 인증을 획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국가를 중심으로 정부가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독일에는 벤츠·BMW·폴크스바겐 같은 전통 업체들이 포진해있고, 체코엔 현대차와 스코다, 이탈리아는 람보르기니·페라리 등의 공장이 있다. 유로 7 규제에 따라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급격히 전환되면 이들 국가의 일자리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전기차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7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지난해 11월 초안을 발표한 ‘유로 7′ 법안은 자동차 오염 물질 배출 기준을 현행 ‘유로 6′ 대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는 질소산화물(NOx)을 포함해 일산화탄소·탄화수소·미세 입자 등 오염 물질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하며, 브레이크와 타이어에서 나오는 분진에 대한 규제가 새롭게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