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0.6%를 기록했다. 미국 진출 36년 만에 ‘마의 10%’를 처음으로 돌파한 것이다. 미국 시장 점유율 10%는 완성차 업체에는 꿈같은 숫자다. 미국 빅3(GM·포드·스텔란티스) 외에 이 기록을 깬 업체는 도요타·혼다뿐이다. 폴크스바겐·BMW 같은 유럽 업체들도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2019년 5월 현대차 북미권역본부장 겸 글로벌운영책임자(COO)로 합류한 호세 무뇨스 사장을 지난 23일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만나 비결을 물었다. 무뇨스 사장은 지난 4년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날 주총에서 현대차에서 단 6명인 사내이사 자리에 올랐다.
◇팬데믹 때 투자 늘리고 신차 집중 출시
“팬데믹 때 경쟁사들이 신차 출시를 미루고 부품 주문과 광고·비용을 줄이는 사이, 우리는 반대로 부품 주문을 지속하고 신차를 내놓고 투자를 했어요. 정의선 회장의 분명한 전략과 현대차의 DNA인 도전 정신이 결합돼 ‘원팀’으로 이룬 성과입니다.”
무뇨스 사장이 제시한 첫 번째 비결은 ‘위기 속 공격 경영’이었다. 실제 2021년부터 신차 수요가 회복되면서 완성차업계에 반도체 대란이 일어났다. 현대차는 이때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2021년부터 아이오닉5, EV6, GV60 같은 전기차를 잇따라 내놓으며 전기차에 앞서가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두 번째 비결은 ‘하루 단위 생산 계획’이다. 아시아를 뺀 나머지 현대차 해외 공장 운영을 책임지는 무뇨스 사장은 “한 달마다 짰던 생산 계획을 하루 단위로 바꾸고 그날 그날 칩 물량을 체크해 투싼보다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수요가 많으면 엘란트라 생산을 늘렸다”며 “이것이 현대차그룹이 작년 글로벌 판매 3위까지 오른 비결”이라고 했다.
◇‘더 적게, 더 크게, 더 낫게’ 전략
무뇨스 사장의 추진력과 딜러 장악력도 한몫했다. 2004년 입사한 닛산에서 멕시코·북미 사장을 거쳐 전사성과책임자까지 오른 무뇨스 사장은 가는 곳마다 뛰어난 실적을 냈고, 카를로스 곤 당시 르노닛산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의 전략은 딜러들에게 현대차를 ‘팔아달라’고 부탁해야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딜러들 스스로가 ‘팔고 싶은’ 브랜드로 만든 것. 그는 현대차의 제품력 향상, 신차 공급 부족을 기회 삼아 딜러들에게 주는 판매 인센티브를 줄이는 한편, 매출과 수익은 올려줬다. 그는 “딜러 수는 적게 유지하면서(fewer) 더 많은 매출(bigger), 더 나은 수익(better)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적게, 크게, 낫게’ 전략으로 딜러들을 설득했다”며 “그들은 이제 현대차와 제네시스를 팔고 싶어 스스로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IRA도 “갖고 싶은 차 만들기”로 극복
미국 IRA(인플레감축법)가 지난해 8월 시행된 이후, 북미산이 아닌 현대차 전기차 판매가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하지만 현대차 전기차 판매는 작년 하반기 잠시 감소세를 보이다가 올해 다시 반등하고 있다. 무뇨스 사장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 비중을 5%에서 30%로 빠르게 늘렸다”며 특히 “아이오닉5를 ‘아무 딜러나 팔 수 없는 차, 아무 데서나 살 수 없는 차’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뇨스 사장에 따르면, 미 딜러들이 아이오닉5를 팔려면 전용 전시 공간을 만들고 충전기를 설치하고, 직원들에게 판매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는 “이렇게 하니 딜러들도, 고객들도 이 차를 더 갖고 싶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네시스 브랜드도 기반이 잘 닦이고 있다”며 “지난해 미국에서 랜드로버·인피니티를 제치고 럭셔리 브랜드 톱 11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은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에는 마치 수많은 레이저가 한 방향을 향해 쏘는 듯한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며 “닛산이나 도요타에서 근무할 땐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경쟁사들도 우리를 눈여겨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고금리로 수요자 중심 시장이 될 것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수요가 더 많다”면서 올해 실적도 자신했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북미 판매 목표는 작년 대비 9% 증가한 196만2000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