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제네시스

현대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지난 2월부터 제네시스 GV70 전기차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정부가 작년 8월부터 시행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라 한국 전기차로 첫 번째 보조금을 받는 차가 될 거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31일(현지 시각) 전기차 배터리 관련 IRA 세부 지침이 나오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북미 현지 생산이라는 기본조건은 충족했지만, GV70에 탑재된 배터리 요건이 안 돼 7500달러 보조금 전액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GV70에 들어가는 SK온의 배터리는 중국에서 배터리 셀을 만들어 국내로 들여온 뒤, 울산공장에서 차량에 넣을 수 있게 배터리를 완성해 앨라배마 공장으로 보낸다. 그런 탓에 IRA 세부 요건을 맞추지 못했다. IRA는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탑재된 배터리가 북미에서 생산·조립된 부품을 50% 이상 쓸 경우 3750달러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가공한 배터리 광물을 40% 이상 써야 나머지 절반을 받을 수 있다.

당초 자동차업계에선 GV70이 ‘미국 내 생산’이란 요건을 갖춘 만큼 보조금 대상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IRA 배터리 관련 세부 규정이 예상보다 더 까다롭게 정해지면서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게 된 셈이다.

◇IRA에 가격경쟁까지, 이중고 겪는 현대차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 판매량은 2016년 1728대에서 지난해 5만8028대까지 가파르게 늘었다. 하지만 8개 차종 모두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기 때문에 IRA 수혜 대상이 아니다. 1000만원 가까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 더욱이 테슬라 등 IRA 혜택을 입는 업체들은 ‘가격 인하’ 전략으로 저가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미국 내 판매량 감소, 국내 자동차 산업 관점에선 수출 하락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현재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지만 빨라도 2024년 말에야 생산이 가능하다. 미국 현지 공장에서 내연기관을 생산하던 라인을 전기차 전용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하고 있지만 노조와 협의가 필요한 데다, 노조 동의를 받더라도 라인을 바꾸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린다.

현대차그룹은 IRA 보조금 혜택을 원칙적으로 받지 못하는 고소득층(부부 합산 소득 30만달러 이상인 경우 등)을 공략한다는 방침이지만 외국 완성차 업체와 경쟁이 불가피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리스·렌털 전기차는 IRA 예외가 적용돼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장을 공략해 최대한 판매 부진을 방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친환경차 판매 중 리스·렌털 비중은 지난해 5%에서 지난달 27%까지 늘어났다.

테슬라 모델Y 롱레인지 사륜구동 모델. /테슬라

◇가격 낮춰 판매 확 늘린 테슬라

미국 전기차 시장 1위 업체인 테슬라의 저가 공세는 거세다. 테슬라는 2일(현지 시각) 1분기(1~3월) 판매량이 42만2875대라고 발표했다. 작년 1분기보다 36% 급증해 분기 기준으로 최다 판매 기록이다. 1월 시작한 최대 20% 할인 전략이 먹힌 것으로 보인다. 1분기 테슬라가 판 차량의 98%는 가격 할인 대상이었던 보급형 세단 모델3와 크로스오버 차량인 모델Y였다. 할인 후 가격이 4만~6만 달러(약 5200만~7900만원) 안팎인 제품이다. 반면 세단 중에서 최고가인 모델S와 최고급 SUV차량인 모델X는 1만695대로 전체 판매량의 2%에 불과했다. 불황 속에서도 ‘전기차도 싸면 잘 팔린다’는 것을 테슬라가 입증한 셈이다.

테슬라발 가격 인하 경쟁은 다른 완성차 업체로도 번지고 있다. GM이 하반기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이쿼녹스EV’를 3만 달러에, 폴크스바겐은 소형 해치백 전기차인 ‘ID.2올(all)’을 2만5000유로(약 3500만원) 이하로 출시한다는 계획이어서 당분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전기차의 고전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