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6' 최근 세계 3대 자동차상 중 하나인 '2023 세계 올해의 차'를 받았다. /현대차

“(새 배출가스 규제로) 2032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3대 중 2대는 전기차가 될 것입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환경보호청(EPA) 마이클 리건(Regan) 청장은 2027년 생산되는 차량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새로운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새 규제는 2027년부터 자동차 회사별로 미국 내에서 판매하는 차량이 1마일(약1.6㎞) 주행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미세먼지 등의 평균 배출량을 2026년 186g에서 2032년 82g까지 56% 줄이게 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으면 막대한 과징금을 물린다. 자동차 회사에 사실상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만 팔라는 압박인 셈이다.

작년 도입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이어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완성차 업체 사이에선 “미국 자동차 시장이 테슬라 같은 미국 전기차 회사에 한층 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IRA로 미국이 생산 거점이 아닌 외국 회사들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미 한 차례 타격받은 상황에서 앞으로 전기차 판매 비중까지 크게 늘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특히 미국 현지 생산이나 수출에서 내연기관차 비율이 압도적인 우리나라 업체들의 고민이 깊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에서 147만대를 팔았는데 이 중 전기차는 5만8000대 정도다. 3.9%인 전기차 판매 비율을 9년 뒤 67%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IRA에 배출가스 규제까지 수출 이중고

현대차는 2030년까지 미국 판매 차량의 58%, 기아는 47%를 전기차로 채우는 게 목표였다. 지난 11일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을 364만대로 늘려, 세계 3대 전기차 기업이 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2032년 신차 판매의 3대 중 2대(약 67%)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미 정부 목표를 맞추려면 공장 증설 등 전기차 전환을 더 가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내연기관차를 개발해 기준을 맞추면 되지만 이는 비용이나 기술 측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내연기관차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여전하기 때문에 생산·판매에서 내연기관 모델을 급격히 줄이기도 쉽지 않다.

한국지엠 상황도 비슷하다. 작년 판매량 약 26만대 중 23만대를 수출했는데 이 중 20만대가 미국으로 향했다. 수출 물량 100%가 내연기관차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테슬라나 루시드 등 미국 전기차 회사는 IRA나 배출가스 규제에 대해 큰 고민 없이 가격을 낮춰 할인 경쟁도 가능하지만, 주요 생산 거점이 북미 외 지역에 있는 경우 IRA로 가격 경쟁에서 손해를 보는 데다, 미국에 수출하던 내연기관차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아의 전기차 EV6. EV6 GT는 최근 2023 월드카어워즈에서 '올해 최고 고성능차' 상을 받았다. /기아

◇배터리 기업은 몸값 높아진다

반면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한 미 정부의 배출가스 조치에 배터리 기업들은 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 자연스럽게 배터리 수요도 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일본 파나소닉과 한국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와 협상 과정에 종전보다 더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는 무게도 많이 나가 완성차 공장과 가까운 곳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는데, 전기차 관련 규제가 잇따르면서 미국 내에서 배터리 조달 경쟁이 벌어지게 됐다”고 했다. 배터리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주요 전자 부품 업체나 충전소 등 전기차 인프라 관련 기업들도 새 규제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 행정부의 ‘신차 67% 전기차’라는 목표가 비현실적이란 비판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1363만여 대 중 전기차는 약 81만대로 비율이 약 6%였다. 판매량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약 9년 새 이 비율이 10배 이상으로 커져야 하는 셈이다. 배터리나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이 부족하거나, 전기차 충전소 등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많다. 전기차 가격이 같은 종류의 내연기관차보다 20% 안팎 더 비싸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