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현대차그룹의 첫 스마트 공장이 본격 가동된다. 하지만 이 공장은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혁신센터’다. 2020년 10월 짓기 시작한 이곳은 현대차의 스마트 공장 구축 기술이자 브랜드인 ‘E포레스트(Forest)’를 온전히 적용한 첫 사례다. 이곳에서 현대차그룹은 근로자를 지원하는 협동 로봇과 자재를 실어나르는 자율주행 물류 로봇 등 첨단 자동화 설비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전기차를 만드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연 3만대 전기차를 이런 식으로 만든다.

현대차그룹은 왜 한국에선 이런 실험을 하지 못했을까. 자동차 업계에서는 강성 노조를 그 이유로 지목한다. 한국 제조업은 로봇 등을 활용한 공장 자동화 부문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국제로봇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로봇 집적도를 기록하고 있다. 집적도는 근로자 1만명당 로봇 보급 대수를 가리키는데, 한국의 로봇 집적도는 932대로 세계 평균의 7.3배에 이른다. 세계 2위인 싱가포르(605대)와 3위 일본(390대), 4위 독일(371대)과도 격차가 크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최근까지 신기술이 도입된 스마트 공장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일자리나 일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노조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많아서다. 지난 2018년 기아는 250억원을 투자해 경기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 자동화 설비를 대거 도입하려다 포기했다. 이 공장은 연 30만대 안팎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1973년에 세워져 국내에서 가장 노후한 공장 중 한 곳이었다. 기아는 조립 로봇, 자동운전 지게차, AI(인공지능) 기반의 품질 향상 시스템 등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고용안정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거세게 반대하면서 계획이 좌초됐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는 2020년 초부터 기존 공장인 현대차 울산 2공장과 5공장, 기아 광명 2공장 등에 스마트 공장 기술인 E포레스트를 시범 적용했다. 국내에서 완성차 공장 하나를 온전한 스마트 공장으로 짓는 것은 2025년 가동되는 경기 화성의 전기차 전용 공장이 사실상 최초다.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LG전자가 2017년부터 파격적으로 창원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바꾼 것처럼 보통 기업 같았다면 대규모 첨단 생산 실험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