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따 해줘!”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볼보 세단 S60 운전석에 탄 채 음성인식 버튼을 누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간에 설치된 10인치쯤 되는 디스플레이(화면)가 밝아지더니 “자동차 시트 열선을 켤게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엉따’는 ‘엉덩이 따뜻하게’의 준말인데, 젊은 층 사이에서 자동차 시트 열선 장치를 가리킨다. 수입차가 한국 청년들의 은어(隱語)를 알아듣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농담 좀 해줘”라고 말했더니 “곰은 사과를 어떻게 먹는지 아시나요? ‘베어먹음’입니다” 같은 우스갯소리도 했다.
국내에서 ‘말 잘 듣는 차’ 만들기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음성인식 기능은 6000만~7000만원짜리 고급차의 전유물이었다. 그마저도 운전자가 “강! 릉! 역!”이라고 또박또박 외치는데도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이랬던 음성인식 기술이 차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운전 중에 여러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차의 다양한 기능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돕는다. 특히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AI(인공지능)와도 관련돼 있어 이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통신사나 네이버·카카오 등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볼보의 경우 2021년 SKT 계열사 티맵모빌리티와 300억원을 공동 투자해 한국 시장만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음성인식 서비스를 도입했다. 차종을 늘려 현재 4000만원 후반대인 XC40까지도 이 기능이 들어갔다.
작년 말 출시된 BMW 7 시리즈는 차량 문을 음성으로 여닫을 수 있다. “문 열어줘” 명령을 받았는데 장애물이 있는 경우,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앞까지만 문을 열까요?”라고 되묻기도 한다. 독일에서 한국어를 인식할 수 있게 개발한 차에 BMW코리아 R&D센터에서 한국어 인식률을 높이는 작업을 추가로 했다. 한국어 명령을 잘 인식할 수 있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도 한다.
도요타·렉서스는 LG유플러스와 협력해 차량 기능을 제어하고 각종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음성인식 기술은 네이버의 AI 클로바가 맡았다. 현대차는 음성인식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관련해 카카오와 협업한다. 최근 출시된 3000만원대 소형 SUV 코나에도 고급차 제네시스와 비슷한 수준의 음성인식 시스템이 장착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지?’ 같은 간단한 정보 검색도 일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