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영국 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는 오는 2025년부터 모든 차량을 딜러사 없이 한국 법인이 직접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재규어는 2025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는데, 이 과정에서 딜러사를 거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혼다는 지난달 20일 대표 SUV ‘CR-V’ 완전 변경 신차를 출시하며 모든 제품을 ‘혼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만 팔기 시작했다. 시승 예약이나 견적 산출은 물론 결제도 온라인에서만 한다. 온라인 판매로 전환하는 업체가 늘자 최근 한 수입차 한국 법인도 딜러를 건너뛰고 직접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신차를 판매하는 방안을 두고 내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수입차를 중심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기존 딜러 중심의 신차 판매 방식을 온라인 방식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소비자들이 비대면 거래를 한층 익숙하게 여기는 것을 배경으로, 유통 단계를 줄여 수익성과 가격 투명성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업 사원 역할 바꾸는 실험 잇따라
모든 차량을 온라인으로 파는 혼다는 전시장에서 ‘딜러’나 ‘영업 사원’ 대신 ‘혼다 큐레이터’로 이름을 바꾼 직원들이 차량 상담만 맡는다. 재규어 역시 혼다와 유사하게 온라인에서 제품 소개와 판매·결제 등을 하고, 오프라인에선 직원들이 시승·상담만 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두 브랜드 이외에도 볼보와 중국 지리자동차가 합작한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가 온라인 판매만 하고 있고, 한국GM이 지난 2월 출시한 픽업트럭 ‘시에라’도 온라인으로만 판다. 수입차 판매 1·2위를 다투는 BMW는 2019년 말, 벤츠는 2021년 말 특이한 색상·옵션이 있는 한정판 위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작년에만 BMW는 6891대, 벤츠는 4500여 대를 파는 등 판매량 증가세가 뚜렷하다. 다만 두 회사는 온라인에선 견적 산출과 예약만 하고, 실제 계약·결제·차량 인도는 딜러를 통한다.
◇ “수익성·가격 투명성 높여라”
자동차 업계에서는 대리점이나 딜러사를 건너뛰어 유통 단계를 간소화해 수익성을 높이는 게 최종 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수입차는 작년 말까지 국내에서 누적 300만대 이상 팔리는 등 이미 대중화가 이뤄져, 현장에서 판촉하는 영업 사원의 역할이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는 인식도 커졌다. 한 수입차 임원은 “딜러사의 경우 기존에 판매한 수입차의 AS 등을 맡는 애프터마켓을 통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돼 있다”면서 “딜러사도 신차 판촉 비용을 줄이는 게 이득일 수 있다”고 했다.
또 하나는 가격 투명성을 높여 수입차 시장에서 벌어지는 지나친 할인 경쟁을 줄이려는 차원이다. 수입차의 경우 어떤 전시장에서 어떤 딜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차량인데도 수백만 원씩 가격이 차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사람보다 비싸게 산 경우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할인 규모가 클수록 단기적으로 딜러사의 수익은 줄고 장기적으로 중고차 값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가격 투명성을 높이고, 제 살 깎아 먹기식 출혈경쟁을 하지 않으려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혼다는 100%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며 어디서나 같은 가격이란 뜻을 담은 ‘원(one·1)프라이스’ 정책을 앞세웠는데 “차값에 거품이 없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겠다”는 설명이 따랐다.
◇ “딜러 역할 ‘판매’에서 ‘AS·제품 소개’로”
앞으로 딜러사나 영업 사원을 건너뛰는 차량 온라인 판매는 늘어나고 딜러의 역할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온라인 거래가 익숙하고 영업 사원과 만나 시승을 요청하고 흥정하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 사례도 있다. 출범 때부터 온라인 판매만 해온 테슬라는 작년에만 1만4571대를 판매했고, 마찬가지로 온라인 판매만 하는 현대차의 경차 ‘캐스퍼’도 작년에 4만8000대 이상 팔렸다.
한편에선 이런 변화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거란 인식도 있다. 우선 국산차 시장에서 90% 안팎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판매노조의 반발 때문에 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이다. 또 굳이 차량 판매나 수익성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기존 판매망을 서둘러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회사도 많다. 한 수입차 딜러는 “차를 사기 전에 직접 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면서 “현장을 뛰는 딜러의 역할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없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