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양산을 시작한 국내 최초 고유 모델 개발 차량인 포니가 돌아왔다. 현대차는 지난 7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포니의 시간’ 행사를 열고 포니와 포니 픽업, 포니 웨건 뿐 아니라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최초 공개된 포니 쿠페 등을 전시했다. 1990년 포니 모델이 단종된 지 33년 만의 일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포니라는 독자 모델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정신적, 경험적 자산이 오늘날의 현대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 신화 쓴 포니
현대차에게 포니 개발은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1967년 설립 이후 현대차는 영국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조립 생산을 했을 뿐, 부품 하나 설계해 본 적이 없는 회사였다.
그러나 정주영 선대 회장은 단순 조립이 아니라 독자 제조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며 양산형 고유 모델을 개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현대차는 이날 행사에 정 선대 회장을 도와 당시 포니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김뇌명 전 기아 사장, 주·단조 공장 설립과 생산 기술을 국내에 도입했던 이수일 전 전무, 포니 완성차 공장 시설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던 서창명 전 전무 등 포니를 만드는 데 주춧돌을 놓은 현대차그룹 전직 임원도 초대했다.
포니를 통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국 브랜드의 고유 모델 자동차를 가진 나라가 됐다. 이후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포니의 수출이 시작됐고, 웨건, 픽업, 3도어 등 다양한 라인업이 출시됐다. 첫 수출국인 에콰도르로 떠날 때 바나나를 실은 배를 이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에콰도르 무역 규제상 바나나를 수출했다는 면장이 있어야 자동차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니는 개발 당시부터 한국인의 체격과 도로 사정을 염두에 둔 탓에,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2만4618대였는데, 포니는 그해 1만726대를 판매하며 점유율 44%를 차지했다. 이후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포니의 점유율이 67%에 이르렀다.
◇종합 모빌리티 전환 기로에서, 포니로부터 배운다
현대차는 지난해 684만대를 팔아 완성차 업체 중 글로벌 3위를 차지 했지만,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중국 시장 영향력 감소 등 다차원의 대외 문제에 봉착해 있다. 테슬라가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이나 반도체 통합 제어 등 분야에서도 험난한 길을 마주해야 한다. 정 회장은 이날 “최근 챗GPT가 연일 화제에 오르는 등 인공지능이 화두가 되고 로보틱스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다는 소식을 접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와 앞으로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됐다”며 “답을 찾기 위해 현대차의 과거 여정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점에서 기본적인 원칙부터 다시 세우겠다는 취지다.
완성차 업계에선 이 같은 현대차의 움직임을 두고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독일, 미국, 일본 자동차 업체들과 비교해 역사가 짧은 탓에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포니를 비롯해 그랜저 헤리티지 시리즈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포니를 디자인했던 조르제토 주지아루는 “현대차는 젊은 브랜드이지만 기원을 되돌아보며 과거를 재평가하고 치적을 기리는 것은 잘하는 일”이라고 했다. 포니 전시의 일반 공개는 9일부터 오는 8월 6일까지 60일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