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가 25년 이상 장기 근속한 정년 퇴직자에게 제공하던 ‘2년마다 신차 25% 할인’ 제도를 모든 정년 퇴직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담은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현대차 노조 측은 “조합원 간 불평등을 없애자는 취지”라며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회사 측과 교섭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글로벌 자동차 판매 3위에 오르자 노조가 매년 해오던 임금 대폭 인상에 더해 이번엔 퇴직 후 복지 확대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에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전환 등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과도하게 퇴직자 복지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건 기득권 챙기기에 불과하고, 경쟁 업체들의 경영 효율화 움직임과도 동떨어졌다고 지적한다. 퇴직자들이 원가보다 싸게 차량을 구입하면서 쌓이는 회사 손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GM을 망가뜨렸던 것이 과도한 퇴직자 복지 제도였다”며 “고비용 경영 구조로는 미래차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했다.
◇원가보다도 싸게 차 사는 퇴직자
7만2600여 명이 근무하는 현대차에선 매년 2500명가량이 정년퇴직한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퇴직자들은 5000만원짜리 차량을 2년마다 3600만원(재직자·퇴직자 현금 할인 3% 포함)에 살 수 있다. 현대차의 매출원가율(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82%가량임을 고려하면 차량 원가(4100만원)보다 500만원 싸게 차를 사는 셈이다. 최근 반도체 부족 사태로 중고차 값이 치솟으면서 이는 현대차 퇴직 직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회사가 감당해야 할 손해다.
현대차 노조는 또 만 60세인 정년을 만 64세로 연장하고, ‘40년 이상 근무자’란 구간을 신설해 금 48.75g, 휴가비로 통상급의 150% 지급 등 1100만원에 달하는 혜택 요구안도 내놨다. 노조 관계자는 “장기 근속자와 퇴직자들의 헌신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고 했다.
이 같은 노조의 퇴직자, 장기 근속자에 대한 복지 확대 요구는 현대차의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발간된 현대차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전체 근로자 중 50세 이상은 3만2032명으로 44%에 달한다. 10%에 불과한 30세 미만(7516명) 직원의 4.5배다. 주류를 차지한 고참 직원들이 조만간 자신들이 맞이할 퇴직 이후 복지 챙기기에 스스로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불만이 가중되며 노노(勞勞)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들 사이에선 “퇴직자에 대한 복지 요구가 임단협 쟁점이 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GM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업계 전문가들은 퇴직자 복지 제도 확대가 장기적으로 현대차 경쟁력을 깎아먹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 GM 등은 지나친 퇴직자 복지 강화 탓에 일본 도요타 등과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GM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였지만 100만명 넘는 직원과 퇴직자, 그 가족의 의료보험료로 지급하는 금액이 한 해 60억 달러(약 7조7000억원)에 달했다. 퇴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은 600억달러 규모로 당시 GM 시가총액의 4배를 웃돌았다. 일하는 직원보다 은퇴 후 연금받는 직원이 두 배 많았지만 GM은 회사를 쥐고 흔드는 전미자동차노조(UAW) 탓에 이를 손대지 못했다. GM은 비용을 제품 가격에 반영했고,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면서 파산했다.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봐도 현대차의 퇴직자 복지 제도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다. 수입차는 물론 한국 GM, 르노코리아차는 퇴직자에 대한 차량 구매 할인 제도가 없다. KG모빌리티도 퇴직자 할인 혜택은 퇴직 후 1~2년까지만 제공한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퇴직자들의 과도한 복지 확대는 경영 악화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외 환경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