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볼보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브랜드의 첫 소형 순수 전기차 EX30을 공개했다. 이 차는 그간 자동차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던 특징이 하나 있다. 성능에 따라 ‘EX30+(플러스)’와 ‘EX30울트라’ 2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EX30+의 경우 소비자에게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도록 했다. 배터리 종류를 ‘자동차 옵션’처럼 만든 것이다. 외장과 실내 디자인, 모터 개수는 같지만, 배터리 선택에 따라 차 값과 1회 충전당 주행거리가 달라진다. LFP 배터리가 탑재된 차는 한 번 충전했을 때 유럽 기준으로 최대 344㎞를 가고 차 값은 3만3795파운드(약 5571만원)다. 반면 NCM 배터리 옵션은 3만8545파운드(약 6354만원)로 차 값이 14% 비싸지만, 1회 충전으로 최대 480㎞까지 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늘면서 소비자들이 차를 고르는 기준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내연기관차 위주의 과거 자동차 시장에선 디자인과 가격이 엇비슷한 경우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요소는 엔진이 몇 기통인지, 변속기가 몇 단인지, 얼마나 연비가 좋은지 등이었다. 하지만 IT 기기가 되어가는 요즘 자동차 시장에선 배터리가 어떤 종류인지, 음성인식이나 자율주행 수준 등 최신 IT기술이 얼마나 적용됐는지가 차량 선택을 좌우하게 됐다는 것이다.

◇‘NCM이냐 LFP냐’ 소비자가 선택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에 어떤 배터리를 넣을지가 최대 고민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데, 현재 주류인 NCM과 LFP 배터리의 장·단점이 워낙 뚜렷해서다. 무슨 소재를 썼는지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붙이는데 NCM은 LFP보다 더 비싸지만, 주행거리가 더 길고, LFP는 에너지 밀도가 더 낮아 주행거리는 짧지만, 더 안전하고 저렴한 게 특징이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에선 “전기차를 배터리 종류에 따라 나눠 개발·출시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면서 한 차종에 한 종류 배터리만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요소로 인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세단 ‘모델3′ 일반 모델에 LFP 배터리를 주로 탑재하지만, 주행거리가 더 길다는 뜻의 롱레인지(Long range)라는 이름이 붙은 차량에는 사륜구동 시스템과 함께 NCM 배터리를 사용한다. 미국 포드도 대표 픽업트럭인 F-150 전기차에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 버전 차를 따로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LFP 배터리 버전의 경우 굳이 주행거리가 길 필요가 없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좀 더 싸게 팔겠다는 전략이다.

그래픽=이지원

◇자율주행·음성인식 등도 구매 좌우

전기차 시대에는 IT 기반 편의 장치가 얼마나 있느냐도 소비자 선택을 좌우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운전자의 주행·주차를 돕는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다. 테슬라는 2018년 선보인 주행 보조 시스템 ‘오토파일럿’에 이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완전자율주행(FSD)’까지 계속 등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달리는 ‘스마트 크루즈’ 기능을 경차 캐스퍼와 레이에도 넣을 정도다. 연말에 출시될 기아 ‘EV9 GT’에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80㎞까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차가 스스로 주행하는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 들어간다.

음성인식 기술도 소비자의 관심사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약을 맺고 미국에서 팔리는 벤츠 차량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시범 탑재하기로 했다. 현재는 차내 에어컨 조작이나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찾고 전화를 거는 간단한 작업만 가능하지만, 챗GPT를 통해 운전과 관련없는 정보 검색, 식당 예약까지 가능한 ‘자동차 안의 비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볼보·BMW 등 수입차 브랜드들은 차량이 한국어 음성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