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현대차그룹은 최근 BYD(비야디)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해외 진출 전략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또 중국 시장과 관련해 그간 세워왔던 전기차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중국 시장을 담당하던 임원 일부를 인사 조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전기차가 최근 해외에서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다 우리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제작 방식까지 갖추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발단은 지난 4월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모터쇼라고 한다. 당시 모터쇼를 찾은 김용화 현대차그룹 최고기술경영자(CTO·사장) 등 간부들이 현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전기차 기술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현대차가 공들이고 있는 자율주행이나 소프트웨어 등에서 중국차 기술이 우리를 앞선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 사장은 지난 5월 한 간담회에서 “우리가 중국 업체들의 기술 개발 속도를 못 쫓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포드의 빌 포드 회장도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전기차로 중국과 경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중국차는 언젠가 미국에도 올 것이고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중국 자동차 경쟁력 상승에 우려를 나타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올해 중국 전기차의 세계 시장 공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한때 ‘싼 모방 차’라는 조롱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그리고 배터리 핵심 광물부터 반도체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공급망으로 무장한 위협적 존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 전기차는 내수 시장이라는 가두리에서 벗어나 이미 유럽과 인도네시아·인도 등 주요국에서 판매 상위권에 속속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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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니·이스라엘 등에서 판매 상위

중국차가 최근 진출하는 지역은 현대차·기아 등 국산차가 10여 년간 공들인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로선 당장 유럽 전기차 시장이 걱정스럽다. 올해 1~5월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MG4가 테슬라·폴크스바겐 등에 이어 판매 6위에 올랐다. 유럽이 본고장인 스코다, 푸조, 르노 등을 모두 제친 것이다. 또 자동차 종주국 독일에서도 작년 10월 최대 렌터카 회사 식스트(Sixt)가 6년간 중국 BYD 전기차 10만대를 구매한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렌터카, 차량 공유 업체,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 분야 전동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해왔는데 이 주도권을 중국차가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전기차 시장 싹이 트고 있는 신흥 시장도 중국 업체들의 주요 표적이다. 중국차는 한국·일본·독일 등과 달리 전기차 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이스라엘에서 1~5월 전기차 시장 1·2위가 BYD와 지리차다. 두 회사가 점유율 52%를 차지하며 현대차·기아는 물론 테슬라까지 제쳤다.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나 인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GM과 상하이자동차가 합작해 만든 상하이GM우링(SGMW)의 전기차 ‘우링 에어 EV’가 8000대 넘게 팔려 현대차 아이오닉5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인도에서도 현지 기업 타타(3만4833대) 다음이 중국의 MG(3891대)이고, 현대차·기아(963대)가 그 뒤였다.

◇기술력에 탄탄한 공급망, 가성비까지

중국 기업들이 해외로 뛰쳐나오는 것은 내수 시장에서 쌓아온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작년까지 14년간 2000억위안(약 35조8300억원) 규모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며 전기차 역량을 키워왔다. 중국 내수 전기차 시장은 2015년 33만대에서 작년 689만대로 커졌다. 작년에만 한국 전체 국산차 판매량(약 140만대)의 5배쯤 되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 등이 팔린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에 들어가 있는 폴크스바겐·GM·현대차 등과 합작하며 이들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발전시키고,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동차 만드는 기초 실력을 20년 넘게 키워왔다.

적기에 자동차 공급이 이뤄질 수 있는 탄탄한 부품·소재 공급망을 갖춘 것도 큰 경쟁력이다. 중국에는 CATL이라는 글로벌 배터리 기업이 있고 BYD는 배터리와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개발·생산한다. 리튬·니켈·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도 중국이 쥐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때인 2021년 반도체 부족 사태로 자동차 공급에 큰 차질을 빚고, 소비자들은 수개월~1년 이상 차를 기다려야 했는데 중국 전기차는 원활한 공급이 가능했고, 이는 신흥 시장에 조기 정착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