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 책임지는 주력 제품이다. 작년 국내 전기차 판매 1·2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상반기 아이오닉5 판매량은 작년보다 27%, EV6는 10% 줄었다. 올해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이 예년 같지 않은 것이다. 수입차까지 포함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에는 63.8% 늘었는데, 올 상반기엔 13.7% 증가에 그쳤다. 이는 국내 전기차 시장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은 작년 전기차 판매가 93% 늘었는데, 올 상반기는 44% 증가에 그쳤다. 파산하는 전기차 스타트업이 나오는 등 구조조정도 시작됐다. 미국에서도 최근 전기차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기차 전환은 중장기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올 들어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뎌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충전이 여전히 불편한 데다 보조금이 감소하면서 가격까지 비싸졌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고가의 대형 배터리가 들어가는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 차보다 보통 30~40% 안팎 가격이 더 비싸다. 전기차 도입 초기만 해도 정부가 이 격차를 보조금으로 메워 구매를 독려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보조금을 줄이고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차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각국의 소비자들이 구매를 망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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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보조금 없이는 너무 비싸”

한국의 경우 2018년만 해도 최대 1200만원에 달하던 정부 보조금이 올해는 680만원으로 줄었다. 반면 물가 상승분이 차 값에 반영되면서 전기차 가격은 더 올랐다. 아이오닉5의 경우 출시 직후인 2021년 6월엔 정부와 서울시 보조금을 받으면 3980만원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조금이 140만원 줄었고 차 값은 오르면서 4550만원이 됐다. 국산·수입 전기차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다.

미국 역시 전기차 판매 증가율이 2021년 94%, 2022년 67%, 올 상반기 50%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젠 전기차 재고까지 쌓이는 실정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 기관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미국의 전기차 재고는 9만2000대로 작년 2분기의 4배가 넘었다. 특히 이 물량이 소진되는 데 걸리는 예상 기간이 평균 92일로 조사됐다. 내연기관 차(54일)의 약 2배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작년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보조금 대상 전기차가 자국 브랜드 위주로 축소된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중국은 2009년부터 작년까지 14년간 2000억위안(약 35조83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풀었는데, 올해부터 이를 중단했다. 경기 침체 조짐까지 나타나면서 중소 업체 중에서 도산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테슬라로 불렸던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톤’이 파산 신청했고, 매장을 줄이거나 직원 월급을 못 주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전기차는 할인, 하이브리드는 전성기?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전기차 전환 초기 시장점유율을 높여 선점 효과를 누려야 앞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반면 전기모터와 가솔린 엔진이 모두 달린 하이브리드차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별도 충전이 필요 없는 하이브리드는 상반기 국내에서 15만1108대 팔려, 판매량이 약 43% 늘었다. 판매량과 증가율 모두 전기차를 크게 웃돈다. 올 1~6월 국내 자동차 판매 1위인 현대차 그랜저는 하이브리드 비중이 52.5%(3만3056대)로 내연기관 차보다 컸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도 IRA로 올 상반기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11%에 그쳤지만, 하이브리드차는 판매량이 69% 늘었다.

전문가 사이에선 전기차 확산 속도가 느려진 현 상황에 대해 전기차 대중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라는 의견이 많다. 여력이 있는 소비자나 신제품을 일찍 경험하려는 ‘얼리어답터’ 등은 이미 대부분 전기차를 구매한 상황이고, 현재 수준의 보조금으로는 중산층 이하에서 새로운 전기차 수요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올 연말부터 주요 기업들이 2000만~3000만원대의 이른바 ‘반값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내연차 가격과 비슷한 수준의 전기차가 나와야 다시 소비가 늘고 시장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