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에서 공개된 기아 EV5는 대형 SUV인 EV9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판매 시작 가격이 15만9800위안(약 2900만원)으로 BYD의 송 플러스 등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됐다. /기아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 인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전기차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물론, 동급 내연기관차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전기차 개발 계획이 잇따르고 있다. 비싼 차량 가격, 줄어드는 보조금,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전기차 판매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가운데 경제적인 보급형 모델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 전환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중국이나, 전기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는 인도 등 신흥국에서는 ‘중저가 전기차’ 판매 여부가 기업 실적을 가르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어 중저가 전기차 개발이 필수 선택지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아는 지난달 중국에서 준중형 SUV EV5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대형 SUV인 EV9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리는 EV5는 현지에서 15만9800위안(약 2900만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예상보다도 크게 가격을 낮췄다. 중국에서는 전기차 1위 기업 BYD(비야디)의 ‘송 플러스’가 이미 3000만원대 가격을 앞세워 중국 최고 인기 전기차로 자리 잡는 등 중저가 경쟁이 치열하다.

중소형차가 인기인 유럽에서도 중저가 전기차 출시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스웨덴 볼보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가격을 낮춘 소형 전기 SUV인 EX30을 지난 6월 공개했다. 이 차량은 이르면 올 연말 판매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도 2025년 2만5000달러대인 소형 SUV인 ID.2를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GM이 3만달러대인 이쿼녹스 EV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이 차는 생산에 드는 인건비를 줄이고자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생산한다. 또 올 초부터 강력한 할인 정책을 내세워 전기차 가격 치킨게임을 주도하는 테슬라는 반값 전기차라 불리는 모델2 개발에 돌입한 상태다.

국내에서도 기아가 지난달 소형 전기차 레이EV를 2775만원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KG모빌리티도 토레스의 전기차 버전인 토레스 EVX를 이달 출시할 예정이다. 시작 가격이 4850만원으로 전기차 보조금 등을 받으면 3000만원대 구매도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중저가 전기차 경쟁은 단순히 가격만을 낮추는 게 아니라 기술력 향상이 필수다. 과거에도 저가 소형 전기차가 나온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1회 충전 주행거리가 200㎞ 안팎에 그쳐 실용성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출시되는 저가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300~400㎞를 훌쩍 넘는 게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저렴하면서도 멀리 달릴 수 있는 배터리 확보가 중요하다. 그런 만큼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LFP 배터리의 사용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8%에서 올해 1분기 35%까지 올랐다. 한때 이 배터리는 저렴하지만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짧다는 게 단점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기술력으로 이 부분을 점점 극복하는 추세다. 실제 지난달 글로벌 1위 배터리 업체 CATL이 1회 충전으로 700㎞ 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LFP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