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로즈타운 모터스의 오하이오 공장에서 전기 픽업 트럭을 제조하던 모습. 로즈타운 모터스는 투자 유치 실패로 자금난을 호소하다 지난 6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사진=로이터 뉴스1

중국 전기차 업계에서 샤오펑, 니오, 리오토와 함께 ‘4소룡(小龍)’으로 불렸던 WM모터스가 지난달 중국 법원에 ‘사전 구조조정’을 신청했다. 파산 돌입 전 법원의 허가 아래 회사 구조조정하는 절차다. WM모터스는 바이두, 상하이차 등 굵직한 업체로부터 350억 위안(6조3000억원)을 투자받으며 2021년 분기 판매량이 1만대를 넘기도 했지만, 올해 1000대 미만으로 쪼그라들며 자금난을 호소해 왔다. 네 마리 용 중 선두 격인 니오도 지난 3일 전체 인력의 10%인 27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다른 지역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 전기차 업체 로즈타운 모터스가 지난 6월 파산을 신청한 데 이어 니콜라, 리비안, 패러데이 퓨처 등이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최근 중국·미국·유럽 등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도산, 구조조정, 투자 연기 등이 잇따르고 있다. 테슬라 등장 이후 사업 내용에 ‘전기차’란 단어만 붙이면 조 단위 자금이 몰리곤 했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내연차보다 ‘더 비싸고 불편한’ 전기차 증가세가 시들해지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미·중 갈등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며 내수가 점차 한계에 다다르는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중국차는 사실상 미국 시장에 발을 붙이기 어려운 상태다.

자동차 업계에선 내실을 갖춘 업체만 살아남는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리 실버그 KPMG 자동차 부문 총괄은 “2027년까지 미국에서만 187종의 전기차가 출시된다”며 “전기차 시장이 섹시하다고 여겨 많은 기업이 진출했지만 손실 보는 업체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글로벌 곳곳에서 쓰러지는 전기차 업체들

전기차 보급이 빨랐던 중국은 구조조정도 가장 빠르다. 유럽 진출 첫 중국 전기차로 유명세를 탔던 아이웨이즈는 판매 부진으로 직원 급여조차 주지 못하다가 최근 공장 문을 닫았다. 톈진 자동차도 지난 3월 부품사인 동안발전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소송을 당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0여 개 중국 자동차 업체 중 15개 업체가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 등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신생 전기차 업체 로즈타운 모터스가 파산신청하고 패러데이 퓨처, 니콜라, 카누, 피스커 등도 양산에 어려움을 겪으며 제대로 된 전기차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일단 투자 연기,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한 버티기에 들어갔다. 니콜라는 이탈리아 트럭 제조 업체 이베코 그룹과 유럽 합작 사업을 중단했고, 애리조나주 공장 생산도 중단했다. 리비안은 벤츠와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다가 자금 문제로 포기했다. 패러데이 퓨처는 CEO를 교체하고, 공장을 판 뒤 임차(세일 앤 리스백)하는 형식으로 자금 마련에 나섰다. CNBC는 “지난 3년간 기업 공개 등을 통해 전기차 스타트업에 들어간 돈만 160조원”이라며 “20여 년 전 닷컴 버블 상황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금리 오르는데 가격 인하 압박까지

전기차 업체의 위기는 자금이 마르면서 불거졌다. 전기차 양산을 위해선 개발부터 생산 인력, 배터리, 반도체 등 부품 확보까지 천문학적 투자금이 필요하다. 자금력과 기술·공급망을 두루 갖춘 대형 자동차 회사보다 가격 경쟁력, 성능이 우수한 차량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 중 3분의 1은 올해 7~9월 차량을 500대도 팔지 못했다. BYD 등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했다. 실적이 부진하다 보니 투자를 더 받기 어렵고, 금리 인상에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쓰러지는 업체가 느는 것이다.

앞으로 상황은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게리 실버그 KPMG 자동차 부문 총괄은 2일(현지 시각) 모빌리티 포럼에서 “미국 정부의 IRA 발표 전 전기차 신차 평균 가격은 6만5815달러였지만 이후 5만 달러대로 낮아졌다”며 “이는 전기차 업체들의 손실 확대를 의미한다”고 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부문 실적 공개를 꺼리지만, 글로벌 1, 2위인 테슬라, BYD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업체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전기차 사업부(e-포드) 실적을 따로 공개하는 포드는 3분기에만 1조7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앞으로 2~3년 동안 실적과 투자 방향에 따라 살아남는 업체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