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전기차 차주들의 걱정도 늘고 있다. 전기차 성능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핵심 지표인데 추운 날씨에 배터리 성능이 하락하며 차량에 따라 주행 거리가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행 거리가 여름철 수준으로 유지되는 차량도 있지만 60%가량으로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전기차의 진짜 실력은 겨울에 가려진다는 말도 나온다.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가 떨어지는 건 배터리 내 리튬 이온의 이동이 둔해지며 성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만 차량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하는 완성차 업체 기술 수준 등에 따라 감소 폭은 달라진다.
본지가 환경부 자료를 토대로 주요 완성차 업체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33종(보조금 지급 대상인 8500만원 이하 차량)을 살펴보니, 상온과 저온 주행거리 차이가 가장 작은 모델은 제네시스의 준대형 세단인 G80인 것으로 나타났다. G80은 섭씨 25˚C에서 측정하는 상온 주행거리(433㎞) 대비 영하 6.7˚C에서 히터를 최대로 작동한 후 측정하는 저온 주행거리(411㎞) 비율이 94.9%에 달해 차이가 가장 작았다. 반면, 아우디와 한국GM 전기차는 환경부의 보조금 지급 기준(65%)을 간신히 넘을 정도로 여름철과 겨울철 배터리 성능 차이가 컸다.
◇혹한에서 강력한 현대차
제네시스 G80에 이어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이 높은 차량은 현대차·기아였다. 기아 EV6(롱레인지, 후륜)가 상온에서 483㎞, 저온에서 446㎞로 92.3%의 비율을 나타냈고, EV6 GT(90.9%), 아이오닉5N(90.9%), 니로 플러스(89.8%) 등이 상위권을 기록했다. 아이오닉5와 GV60·70 모두 85% 이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테슬라 전기차의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은 모델Y(퍼포먼스)가 87.9%, 모델3(퍼포먼스) 86.6%로 나타났다. 최근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한 ‘중국산 모델Y(후륜구동)’는 상온(350㎞) 대비 저온(277㎞) 주행거리 비율이 79.1%였다. 벤츠의 경우엔 SUV EQA와 EQB가 각각 80.7%, 81.7%를 기록했고, BMW는 전기 세단 i4가 73.6%를 나타냈다.
저온 때 주행거리 감소가 가장 큰 차량은 아우디의 Q4 e-트론이었다. 상온에서 411㎞를 기록했지만, 저온에서 268㎞까지 떨어져 효율이 65.2%에 머물렀다. 환경부는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비율이 65% 이하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데 턱걸이로 기준을 넘은 것이다. 한국GM이 내놓은 볼트EV(65.9%), 폴크스바겐 ID.4(71%) 등도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환경부는 보조금 지급 최소 기준을 내년엔 70%로 상향할 예정이다.
수입차와 비교해 현대차의 저온 주행거리가 덜 줄어든 건 열 관리 기술 덕이다. 현대차는 전기 모터나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을 실내 난방에 활용하는 ‘히트 펌프’를 달고 있다. 테슬라 차량에도 이 장치가 달려있지만 열 회수 측면에서 현대차 장치 효율이 더 높다는 평가다. 모터·배터리·전장 장치에서 발생하는 각기 다른 온도의 열을 차량 상태에 따라 더 똑똑하게 흡수해 활용한다.
◇겨울철 주행거리 늘리려 편법 개조도
최근 히트 펌프 등이 빠진 전기차를 산 소비자 중엔 중고 시장에서 ‘무시동 히터’를 구매해 장착하는 경우도 많다. 경유나 등유로 연소하는 별도의 장치를 설치해 차량 내부 난방을 하는 것이다. 이를 사용하면 히터를 사용할 때 배터리 소모 등을 줄일 수 있어 주행 거리 감소가 덜 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자동차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 이를 설치하는 업체의 광고나 설치하려는 소비자 문의가 계속해 늘고 있다.
문제는 안전이다. 무시동 히터는 편의 장치로 분류돼 불법은 아니지만, 일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데다 차량에 경유 등을 싣고 다닌다는 점에서 화재 가능성을 높일 위험이 있다. 특히 전기차는 배터리 셀에 불이 붙으면 단기간 열이 치솟는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하는 등 화재에 취약하고 진화가 어려워 사고 시 피해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무시동 히터 탑재는 전기차 난방 장치를 임의 개조하는 편법”이라며 “법으로 설치 반대를 강제하기 어려워 차주들에게 위험을 지속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