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대전 대덕구 한온시스템 아시아·퍼시픽 이노베이션센터의 풍동시험실에서 연구원들이 개발 중인 ‘열관리 시스템’을 전기차 아이오닉5에 설치해 성능 시험을 진행하는 모습. 이곳에선 외부 온도를 영하 40도~영상 60도로 바꿔가며 전기차가 열과 추위 속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한다. /신현종 기자

지난 9월 26일 대전 대덕구 한온시스템 R&D(연구·개발) 기지인 아시아·퍼시픽 이노베이션센터의 풍동시험실. 전기모터와 배터리 등 주요 부품에 200여 개의 센서를 매단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한 대가 있었다. 외부 온도를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바꿔가며 차를 제자리에서 최고 시속 250km로 달리게 하는 시험이 한창이었다. 이 차에 장착된 ‘열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열관리 시스템은 배터리·모터 등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과열·과냉각을 막는다. 겨울에는 이 부품 성능에 따라 전기차 주행거리가 최대 100km 안팎 좌우된다. 한온의 열관리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롤스로이스가 작년 선보인 첫 전기차 ‘스펙터’나 포르셰의 첫 전기차 ‘타이칸’, 독일 폴크스바겐의 첫 전기차 ‘ID.3′ 등에 모두 한온 제품이 탑재됐다.

그래픽=양진경

국내 대표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모비스·한온시스템·HL만도가 나란히 올해 1~3분기(1~9월)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약 36조6000억원을 해외에서 벌었다. 연말 매출은 5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일본 대표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스즈키의 연매출(약 42조원)을 넘어섰고, 프랑스 1위 자동차 기업 르노그룹(약 61조원)을 추격하는 수준이다.

이런 고속 성장은 핵심 파트너인 현대차·기아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3위를 기록하며 선전한 영향도 크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해졌다. 폴크스바겐·GM(제너럴모터스)·롤스로이스·포르셰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등 대표 차종에 한국 부품을 장착하는 사례가 늘어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지난 반세기 독일·일본·미국 기업을 쫓아가기 급급했다. 완성차인 현대차·기아도 힘들었지만 아랫단의 부품사 상황은 더 열악했다. 하지만 전기차를 필두로 한 ‘미래차 시대’에 반전이 시작됐다. 현대차·기아와 더불어 최근 10년 안팎 쌓아온 미래차 부품 기술력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다. 차에 IT 기술까지 결합하면서 삼성·LG 등 한국 대표 기업도 미래차 부품 시장에 진출 중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미래차 핵심인 전장 부품 시장 규모는 2028년 3230억달러(424조42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그래픽=양진경

◇한국 부품으로 성능 높이는 롤스로이스·포르셰

현대모비스는 올해 현대차·기아가 아닌 해외 자동차 기업에서 85억7200만달러(11조2668억원) 규모의 부품 공급 계약을 수주했다. 2021년 약 25억달러였던 연간 해외 수주액이 2년 만에 3.4배가 됐다. 올 하반기 폴크스바겐에서 약 5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공급 계약을, 벤츠에서 차세대 전기차 섀시 모듈(차 뼈대) 공급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직원들이 회사명에 ‘현대’를 지운 명함을 들고 다니며 필사적으로 해외 수주를 하는 데다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전기차 경쟁력 중 하나가 모비스의 힘이라는 걸 인정받은 결과다.

HL그룹(옛 한라그룹)의 주력 계열사 HL만도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해외 매출 5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만도의 자율주행 전문 자회사인 HL클레무브의 경우 2000개 이상의 자율주행 관련 특허를 바탕으로 만든 카메라·레이더 등을 미국 전기차 기업 ‘리비안’ 등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2조9000억원을 수주했는데 이 중 65%인 1조9000억원이 해외에서 나온 성과다.

◇삼성·LG도 뛴다... 확장하는 K부품

삼성과 LG 등 대표적인 한국 전자 기업들도 미래차 부품 산업에 뛰어들면서 한국 미래차 부품의 외연은 더 확장되고 있다. LG전자는 자동차 전장 부품 매출이 올해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GM(제너럴모터스) 등에 주로 공급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전기차 모터 등이 주력 제품이다. 삼성전자도 고성능 자동차 반도체를 개발하며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고객으로 맞고 있고, 삼성전기도 전기차의 각종 부품에 흐르는 전류를 제어하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에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