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 법안이 자국 전방 산업 보호를 위해 글로벌 공급망 질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에서도 ‘자국 이기주의’ 형태로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4일(현지 시각) ‘프랑스판 IRA’로 불리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편을 적용한 ‘보조금 수령 차량 리스트’를 공개했다. 보조금을 받는 79종 대부분은 유럽산 차량이었고, 유럽 밖에서 만들어지는 차량은 대거 탈락했다. 한국차는 체코에서 생산한 현대차 한 종만 포함됐다. 올해까지 보조금을 받았던 기아 니로·쏘울은 한국에서 생산해 프랑스로 운반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미국 IRA의 리스차 제외 규정과 같은 예외가 없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산 차량 우대 정책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탈리아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고 튀르키예는 전기차 업체들이 140개 이상의 서비스 센터, 콜센터 등을 보유하게 하는 식으로 외국 업체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현대차 제공

더욱이 EU는 핵심 원자재의 유럽 내 생산 비율을 끌어올리는 내용의 CRMA(핵심 원자재법) 도입도 발표한 상태다. 지난달 시행을 위한 최종 관문인 EU 이사회, 유럽 의회, EU 집행위 간 3자 협상도 타결했다. CRMA는 리튬·니켈·알루미늄 등 핵심 광물을 EU 내에서 일정 비율 가공·재활용하도록 규제하는 것으로, 2030년까지 광물 수입 비율을 65% 이하로 낮추는 걸 골자로 한다.

일본 정부도 조만간 전기차·배터리·반도체·재생 항공 연료·그린 스틸 등 전략 사업 5개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일본판 IRA’를 발표한다. 다섯 산업 관련 제품을 일본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하는 업체에 10년간 법인세를 최대 40% 줄여주는 정책이다. 인도도 자국에 들어오는 생산 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리고, 니켈 등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IRA, 유럽 CRMA 등이 대중 제재 성격으로 출발했지만, 국내 업체들의 타격도 있는 만큼 신 공급망 질서를 대비한 새판 짜기에 돌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지 공장 설립이나 유럽 내 안정적 광물 확보뿐 아니라 폐배터리 기술을 이용한 원자재 재활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기술 개발 등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그동안 자유 무역 기조에서 성과를 누려왔지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최대 라이벌인 중국 업체들이 공격 대상이 된 만큼 민관이 함께 영리한 제도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