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중국 광둥성 선전항에서 네덜란드와 독일 등으로 수출되는 BYD 전기차가 선적 대기 중인 모습. BYD는 지난해 157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시장 2위였지만, 4분기만 놓고 보면 테슬라에 앞서 1위를 기록했다. /신화 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인하 전쟁(치킨 게임)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1월 테슬라가 미국·유럽·한국 등 주요 지역에서 차량 가격을 최대 19% 내리며 1차 가격 인하 전쟁을 일으킨 지 1년 만이다. 그런데 올해 가격 인하를 주도하는 건 테슬라가 아니다. 이번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중국의 BYD가 불을 지폈다. BYD는 새해부터 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기습적으로 가격을 내렸고, 다른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이 BYD를 뒤따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 2위에 오른 현대차도 가격 인하 경쟁에 가세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미국 시장에서 7500달러(약 1000만원)에 이르는 가격 인하에 돌입했다. 포드·리비안·루시드도 가격 인하 방침을 밝혔다.

업계에선 경기 침체에 따른 전기차 수요 둔화가 예상되자 가격 경쟁력을 가진 BYD가 판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통상 특정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 선두 업체가 가격을 무기로 경쟁사의 싹을 잘라내려는 치킨 게임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옥석 가리기’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BYD발 치킨 게임 2라운드

BYD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독일에서 전기차 가격을 15% 내렸다. 주력 차종인 SUV 아토3는 4만유로(약 5800만원) 이하로 가격이 낮아졌다. 이튿날 테슬라가 곧바로 반격했다. 테슬라는 한발 더 나아가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에서 최대 10.8% 가격을 내렸다. 앞서 BYD가 중국에서 300만원가량 차 값을 내리자, 테슬라가 뒤따라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업계에선 여전히 전기차 판매 초입 단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고객에게 일단 자사 전기차를 경험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수익을 낮추더라도 판매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차 수요 둔화가 예상되자, 가격을 낮춰서라도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업체나 가격 인하를 주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품질이나 대규모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는 가격 인하에 따라 적자가 확대되며 기업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대만과 일본의 D램 업체들이 무리한 치킨 게임을 벌이다 파산했던 게 대표 사례다. 완성차 업계에선 가격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가 테슬라였는데 BYD가 비슷한 지위에 올라섰다고 보고 있다.

BYD(157만4722대)는 2023년 전기차 판매에서 테슬라(180만8581대)에 23만대가량 뒤진 2위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테슬라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BYD는 지난해 4분기, 분기 기준 판매량에선 테슬라를 제치기도 했다. 더욱이 BYD는 전기차만 만드는 테슬라와 달리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배터리 등 핵심 부품까지 생산해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기업의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에서 BYD는 지난해 3분기 13.6%를 기록해 테슬라(7.6%)보다 높았다.

◇현대차도 7500달러 가격 인하

BYD발 가격 인하 움직임에 따라 현대차 등 다른 브랜드들도 할인전에 뛰어들었다. 현대차는 지난 3일부터 미국에서 아이오닉5·6, 기아 EV6 등에 7500달러(약 1000만원) 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부턴 프랑스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독일에서도 보조금이 사라져 유럽에서도 할인 폭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포드, 리비안과 루시드 등도 가격 인하를 단행했거나 준비 중이다.

문제는 이익 감소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부문 실적 공개를 꺼리지만, 테슬라와 BYD 두 회사를 제외하면 모든 업체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전기차 사업부(e-포드) 실적을 따로 공개하는 포드는 지난해 1~3분기 누적 손해가 31억달러(약 4조16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가격 인하가 계속되면 경쟁력이 약한 일부 업체는 이익이 크게 줄면서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되고, 결국엔 치킨 게임의 최종 승자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