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19일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사막에서 열린 ‘죽음의 경주’ 다카르 랠리에서 아우디 RS Q e트론이 모래를 헤치며 사막을 달리고 있다. 전기모터 2개로 달리면서 가솔린 엔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인데 전기 동력 차가 다카르 랠리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우디

‘죽음의 경주’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다카르 랠리’에서 올해 처음으로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가 우승을 차지했다. 아우디가 만든 ‘RS Q e트론’이다.

1978년 시작된 다카르 랠리는 14일 동안 사막이나 계곡, 산길 등으로 된 구간 약 8000㎞를 달리는 시합이다. 지난 5~19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6회 대회가 열렸다. 험한 오프로드를 하루 평균 500~600㎞씩 전력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주행 거리 한계가 있는 전기차는 무리란 평가가 많았다. 경기 도중 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디는 지난 2022년부터 전기모터 2개와 배터리로만 달리되, 가솔린 엔진과 발전기를 자동차 내부에 따로 달아 수시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차를 만들어 이 벽을 넘었다. 이 방식은 미국 자동차 ‘빅3′ 중 한 회사인 스텔란티스가 올 연말 출시할 픽업트럭 전기차에 적용할 계획이라 앞으로 시장에서 더 확대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다소 주춤해졌지만, 험로(險路)를 달리는 크고 힘센 전기차 개발 경쟁은 물밑에서 더 치열해지고 있다. 고성능 오프로드 차 시장은 내연차에 비해 순간 가속이 뛰어난 전기차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성능이 좋으면서 내구성까지 갖춘 차를 만든다는 점에서 자동차 기업의 기술력을 뽐낼 수도 있다. 전기차 아이콘 테슬라도 아직 넘보지 못할 거란 평가가 나오는 분야라, 현대차·도요타·폴크스바겐 등 전통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뛰어들고 있다.

◇왜 전기차로 사막 경주에 나섰나

아우디가 전기 동력차로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22년과 2023년에도 모터 2개와 발전용 가솔린 엔진을 단 같은 구성의 차로 경주에 뛰어들었지만 험한 길에서 차 서스펜션이 망가지거나 타이어가 터지는 등 고장과 사고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올해 차체를 강화하는 등 내구성을 더 높인 데다, 세 번째 참여라는 경험까지 더해진 것이 우승 비결이라고 한다.

아우디가 이 대회에 계속 참여하는 건 혹독한 레이스야말로 전기차 자체의 강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봤기 때문이다. 내연차는 엔진에서 연료를 폭발시켜 회전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힘을 낸다. 반면 전기차는 배터리에서 모터로 전류를 흘려보내는 즉시 최고 출력이 나온다. 구덩이 탈출이나 초반 가속은 전기차가 더 낫다는 것이다. 멈춘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제로백’이 전기차가 내연기관 수퍼카를 앞지르는 경우가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카르 랠리는 그 자체가 자동차 성능 시험장이다. 전기차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기온이다. 20~40도 안팎의 적정 온도를 벗어나면 배터리가 제 성능을 못 내는데, 다카르 랠리에선 영하부터 최고 40~50도까지 수시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차체 하부가 수시로 충격을 받는 건 물론이고 모래나 먼지가 기기를 손상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내구성을 시험해볼 수도 있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와 비교해 부품 수가 30~40% 적어 오프로드 주행에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구조가 덜 복잡한 만큼 고장 우려도 작다고 한다.

그래픽=김현국

◇힘센 전기차 만드는 기업들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기업들의 전기차 전략은 많이 팔리는 중저가의 중소형 전기차를 파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전기차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힘센 전기차’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1960~1970년대 미국 오프로드 SUV·트럭 브랜드로 유명했던 ‘스카우트’를 인수해 오프로드용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올해 시제품이 나온다. 현대차는 작년 고성능 N브랜드를 통해 ‘아이오닉5 N’을 선보였다. 수퍼카급인 650마력을 내는 차다. 도요타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좋아하는 차로 유명한 ‘랜드크루저’의 전기차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오프로드 전문 브랜드인 지프나 랜드로버 역시 그랜드체로키나 랭글러, 디펜더 등 대표 제품을 잇달아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다.

또 전기차 배터리에서 전력을 빼내 야외에서 조명이나 가전제품 등을 작동시키는 기술이 확산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대형차의 경우 배터리가 커서 오프로드 주행뿐만 아니라 야외 활동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진이나 한파 등 각종 재난 때 전력원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력 효율이 낮다는 게 이런 고성능 전기차의 단점이라고 지적한다. 차체나 배터리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주행거리 손해를 많이 볼 수밖에 없고 차 가격도 비싸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