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작년 말 7899억달러(약 1055조원)에 달했던 전기차 산업의 아이콘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한 달도 안 돼 2074억달러(약 277조원) 줄었다.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순위로 2~5위인 SK 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4곳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가 증발한 것이다. 테슬라 주가가 작년 12월 29일 주당 248.48달러에서 이 기간 26% 떨어진 여파다. 테슬라가 상장돼 있는 나스닥 지수가 약 3% 오른 것과 상반된다.

그래픽=김현국

테슬라는 지금의 글로벌 전기차 산업을 이끈 기업이다. 액면분할 전인 2021년만 해도 주가가 주당 1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국내외에서 ‘천(1000)슬라’ 열풍이 불었다. 국내에서 해외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지난 25일 기준 테슬라 주식을 약 100억달러(약 13조원)어치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소프트웨어로 자동차를 제어하고 원격으로 업데이트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차체(車體)를 한 번에 통째로 찍어내는 ‘기가 캐스팅’ 등 다양한 혁신을 확산시킨 기업이라는 인식에 투자가 몰렸다.

하지만 자동차업계나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테슬라가 앞으로 1~2년 고비를 맞을 것”이란 우려스러운 전망이 잇따라 나온다. 미국 JP모건은 올해 테슬라 주가가 연말까지 지금보다 30%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테슬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신차 없는 자동차 회사된 테슬라

테슬라는 전기모터로만 달리는 순수 전기차만 판매한다. 그런데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증가율이 2022년 67%에서 작년 39%(1~3분기 기준) 선으로 주춤하자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도요타나 현대차·기아 등 다른 차 기업들은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늘리며 작년 역대급 실적을 올린 것과 대비됐다.

테슬라는 ‘전기차 위기’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한 뒤 ‘가격 인하’ 정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내내 차 가격을 대폭 할인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난 24일 테슬라가 발표한 작년 4분기 실적이다. 가격 할인으로 판매가 늘면서 매출은 2022년 4분기와 비교해 8% 늘어난 약 252억달러였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억달러로 반 토막 났다. 뉴욕타임스는 “테슬라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자동차 기업이었지만 이제 다른 기업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며 “각종 전기차 보조금이 없었다면 작년 4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통 자동차 기업은 매력적인 새로운 차를 출시해 실적 부진을 극복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앞으로 1년 넘게 내놓을 신차가 없다. 테슬라가 가장 많이 파는 전기 SUV 모델 Y만 해도 나온 지 4년이 돼 참신함이 떨어졌다. 작년 말 출시한 신차인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은 연 13만대 생산이 목표지만, 생산이 원활하지 않아 수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모델2′로 불리는 개발 중인 중저가 신차는 2025년 하반기에나 나온다. 모델 3·X·Y·S로 버텨야 하는 셈이다.

테슬라는 올해 이례적으로 연간 판매량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기술력은 있지만 당장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신제품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탓이란 분석이 많다.

◇美 선거와 중국도 변수, 기술력 극복 가능할까

올해 미국 대선도 변수다. 테슬라는 미국, 중국, 독일 공장에서 연간 최대 235만대 생산능력을 갖췄는데 이 중 중국 비율이 40%(약 95만대)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중국산 테슬라 약 34만대가 유럽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돼 팔렸다. 반중(反中) 정서가 뚜렷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중국산 테슬라 판매에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다른 기업보다 앞서 있는 IT 기술력이 차별화 요소다. 자체 개발 중인 AI(인공지능)와 수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 FSD(Full Self Driving)가 대표적이다. 테슬라는 이르면 다음 달 업그레이드한 FSD를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특히 이 기술을 다른 자동차 기업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어 전기차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내년 생산이 예고된 사람 형상의 로봇 ‘옵티머스’ 상용화가 가능한지도 변수다.